유죄율 99.9% 사회는 천국일까, 지옥일까. ‘99.9 형사전문변호사’란 제목의 드라마가 묘사한 일본의 형사재판 얘기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여고생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중에서 자살하는 일을 겪은 형사전문변호사다. “일어난 사실은 단 하나”라며 입버릇처럼 되뇌며 0.1%란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무죄를 입증해 나간다.
과거 일본 법원의 현실은 2016년 첫 방영된 99.9 드라마보다 더 심했었다. 20년 전인 2005년만 해도 유죄율 99.99%, 무죄율은 0.1%가 아니라 0.01%(1만 명당 한 명)에도 못 미쳤다. 드라마 덕분인지 2023년 유죄율 99.8%로 내려가고, 무죄율 0.04%로 근소하게 올랐다(일본 법무성 『2024년 범죄백서』).
유죄율 99.9% 일본 사법의 오명
‘입법·행정’ 권력과 사법 유착 의심
차라리 내각제 개헌 하면 어떤가
이런 일본 사법을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다. 선량한 경찰이 국민 세금과 공권력을 동원해 성의를 다해 정밀하게 수사하고, 이어 검찰은 자료와 증거로 입증되는 사건만 기소하며, 판사가 공판에서 이를 충분히 검토한 결과라고. 일본에선 경찰과 검찰 수사와 기소 단계부터 철저한 조사와 확실한 증거 수집을 하고, 유죄가 확실한 사건만 선별해 재판에 넘긴다는 뜻에서 ‘정밀사법’이란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20년 전엔 기소율이 50%를 넘었지만 2023년 기준으로 형사범의 36.9%만 기소하고 3분의 2(63.1%) 사건은 불기소했다. 불기소의 대부분은 ‘혐의는 있는데 사안이 경미하다’ 등의 이유로 처벌을 보류하는 기소유예(53.1%)였다.
기소유예는 재판을 통해 유죄를 받은 게 아니지만 언제든 다시 수사받을 수 있어 당사자 입장에선 인권침해적이고 억울할 수 있다. 더구나 일본은 한국 헌법재판소의 기소유예 취소 청구 헌법소원처럼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할 수 있는 제도도 없다. 국가 권력의 결정은 무오류라는 제국주의 시절 관념도 깔려 있다. 유죄율 99.9%의 또 다른 이면이다.
99.9% 일본 사법의 가장 큰 문제는 삼권통합은 아니더라도 정부 권력과의 유착 의혹이다. 입법·행정권이 통합된 의원내각제여서 권력의 추가 확연히 기울어 사법부 독립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 격인 일본 최고재판소 장관은 내각이 지명해 천황이 임명하고, 나머지 14명의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내각이 임명하는 게 대표적이다. 내각이 나머지 일반 법관 임명권도 갖는다. 내각관방의 인사검증 등 입김에서 법원이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일본을 여당이 추진 중인 형사사법의 개혁 방향이 닮아가는 건 어쩐 일인가. 윤석열 원죄를 짊어진 ‘검찰 폐문’, 공소청 전환만 해도 형사사법 78년 만의 대변화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더해 행정안전부 산하에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까지 신설하는 건 수사권을 경찰 중심으로 통일하자는 얘기다. 여기에 국무총리 산하 국가수사위원회를 만들어 각 기관의 수사권을 조정·통제하자는 건 일본 내각부의 국가공안위원회-경찰청이 모델 아닌가.
더 심각한 건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라는 식으로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론을 필두로 여당의 우격다짐식 ‘사법부 종속’ 요구다. ‘조희대·한덕수 회동설’ 음모론으로 불을 지피더니 공수처법을 개정해 청부 수사를 시킬 태세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중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26명 중 22명을 임명하게 하는 ‘대법관 증원법’과 국회 5명, 법률가 단체 5명 등 외부 인사 3분의 2로 구성하는 ‘법관평가제 법안’에 이어 법무부(1명), 대한변협(4명), 법원 판사회의(4명)가 추천하는 법관을 임명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신설도 밀어붙인다. 헌법 101조(사법권), 103조(재판 독립), 104조(법관 임명권) 등을 침해해 삼권분립을 훼손한다는 지적에도 막무가내다. 내각제인 일본도 이런 식으론 안 한다. 이럴 바에 여당 주도로 헌법의 권력 분립 시스템을 다시 쓰면서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는 게 국민 앞에 당당한 방법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