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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만에 울린 ‘에밀레종’…“경주지진·기후위기 대비해야”

중앙일보

2025.09.24 08:41 2025.09.2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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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그친 서라벌(경주의 옛 이름)의 밤에 유장하고 둥근 종소리가 나즈막히 퍼져갔다. 귀뚜라미 소리와 어우러지는 ‘천년의 울음’에 771명의 시민 참관단이 침묵 속에 귀를 모았다.

24일 국립경주박물관 내 성덕대왕신종 종각에서 열린 타음조사 공개회. ‘에밀레종’이라는 별칭을 지닌 국보 ‘성덕대왕신종’(높이 3.66m, 무게 18.9t) 앞에 국가무형유산 주철장 이수자 원천수씨와 보신각 종지기 신철민 주무관이 섰다. 길이 187㎝, 두께 35㎝의 당목(종 치는 막대기)이 연꽃무늬 당좌(종 치는 자리)에 닿을 때마다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여음도 되풀이 됐다.

24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성덕대왕신종 공개 타음행사가 열렸다. 무형유산 주철장 기능이수자 원천수씨와 보신각 종지기 신철민 주무관이 타종하고 있다.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이날 공개 타종은 2003년 개천절 이후 22년 만. 타음조사를 겸해 총 12회 타종이 이뤄졌다. 타음조사란 사람의 건강검진 같은 것으로 주기적으로 이상 여부를 점검하는 차원이다. 이에 앞서 고해상도 정밀 촬영(22일), 작은 타봉을 이용한 종의 맥놀이(진동수가 다른 두 파동의 간섭으로 소리 크기가 바뀌는 현상)와 고유 진동 주파수 측정(23일) 등이 진행됐다.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혜공왕 7년(771년)에 완성돼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범종이다. 특유의 웅장함·역동성·조화로움 때문에 종소리의 신비함을 분석한 과학조사도 이뤄진 바 있다. 2018년 관련 보고서를 내고 이번 타음조사에도 참여한 김석현 강원대 교수(메카트로닉스 전공)에 따르면 “‘대칭성 속의 비대칭성’이라 할만큼 적절한 당좌 위치와 이로 인한 맥놀이가 절묘하다”고 했다. 타종 후 크게 퍼져간 소리가 잠시 잦아들었다 다시 커지는 맥놀이가 “마치 되살아나 곡을 하는 어린아이 울음소리처럼 들린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에밀레종 제작에 깃든 ‘어린아이 인신공양’ 설화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다만 과학 성분 분석을 통해 이는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1992년까진 제야의 종(33회)으로 꾸준히 쳤지만 균열 우려 등으로 정기 타종이 중단됐다. 이후 세차례에 걸쳐 비공개 타음조사를 했고, 2020~2022년 이뤄진 마지막 조사 때도 특별한 변화는 관찰되지 않았다. 다만 종의 몸통에 비해 용뉴(龍鈕, 종 꼭대기 부분의 장식)가 취약한 것으로 드러난 데다 금속유물을 야외에 보관하는 데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이번 타음조사를 담당한 김연미 학예연구사는 “경주 지역의 여름철 평균습도가 72~83%나 된다”면서 “경주 지진(2016년)을 비롯한 재해·오염·기후위기 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상덕 관장은 “천년을 이어온 종소리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오는 2029년까지 주기적 타음 조사를 한 뒤, 이를 바탕으로 향후 과학조사와 보존이 가능하고 신종 전체를 볼 수 있는 전시 공간(신종관)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신종관은 현재 종각 자리에 신축되며 관련 예산은 약 500억원으로 예상된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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