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지난 7월 극한 호우 때 ‘대통령 허위 보고’ 논란이 일었던 정영철 경남 산청 부군수를 ‘신분상 조치’하라고 산청군에 요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정 부군수의 호우 피해 상황 보고가 부적정해 공무원의 ‘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행안부는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한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 담긴 ‘공직기강 확립 관련 유의사항’을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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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에 부적정한 보고…“공무원의 성실 의무 위반”
24일 행안부 등에 따르면, 행안부 복무감찰담당관실은 지난달 말 산청군에 정 부군수를 훈계 조치할 것을 요구했다. 지방공무원법상 ‘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단 이유에서다. 인사혁신처가 작성한 ‘공무원 징계제도 안내’를 보면, 훈계는 법상 징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는 아니지만, 불이익 처분에 해당한다. 일종의 경고성 조치다.
행안부는 지난 7월 21일 산청을 찾은 이 대통령에게 한 정 부군수의 피해 상황 보고를 문제 삼았다. 당시 ‘(산사태 위험이 큰) 산불 발생 지역에 피해가 없냐’는 이 대통령 물음에 정 부군수는 ‘피해가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지난 3월 대형 산불이 났던 산청 시천면에서도 호우로 토사가 쏟아져 일부 피해가 있었단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대통령 허위 보고’ 논란이 일었다.
이후 7월 24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허위·부실 및 조작 보고에 대해 강하게 질타하고 경고했다고 강유정 대변인은 전했다. 7월 19일 극한 호우에 따른 산사태로 산청에서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었다. 논란이 일자 정 부군수는 ‘(산청전역이 아니라) 산불 피해 지역에는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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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정책 결정자 판단 등에 혼란 초래”
하지만 행안부는 당시 정 부군수의 보고가 부적정했다고 판단했다. ▶사실과 다르게 보고할 의도는 없었더라도 엄중한 상황에서 업무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구체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보고를 한 사실 ▶세부적인 현황을 파악하지 않은 채 사실과 다르게 보고해 정책 결정자 판단 등에 혼란을 초래한 점을 이유로 공무원의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지방공무원법 제48조(성실의 의무)는 “모든 공무원은 법규를 준수하며 성실히 그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행안부는 정 부군수를 이 같이 조치한 이후인 지난 18일 전국 17개 시·도에 ‘공직기강 확립 관련 유의사항 안내’라는 공문도 보냈다. ▶현장 확인을 통해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해 보고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고 받은 대략적인 상황을 토대로 개인적인 추측을 반영한 보고는 지양하란 내용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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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기강 잡기에 지자체 술렁
일선 지자체들은 잔뜩 움츠러드는 분위기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여러 지역에서 보고를 잘못한 일들이 잦으니, 공직기강 확립 차원에서 유의하라고 공문을 보낸 것 같다”면서도 “말이나 보고를 잘못해 욕 먹을 순 있는데, ‘성실 의무 위반’으로 문책이나 징계까지 받을 수 있게 되니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대통령이나 장관에게 공무원이 중요 보고를 하는데, 사실을 오인했거나 준비가 덜 됐으면 그건 기강의 문제”라면서도 “사람이 말하다가 실수하거나 기억이 헷갈릴 수도 있으니, 그것만 가지고 징계까지 내리진 않는다. 그래서 훈계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