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연설때 각종 장비가 고장난 것을 ‘사보타주(방해공작)’라고 주장하면서 유엔 차원의 즉각적인 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유엔은 “우연한 사고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유엔에서 어제 정말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한두 건이 아니라 3건의 매우 사악한 사건이 있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위해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이동하던 중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멈추면서 걸어서 올라가야했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며 주위를 살피는 모습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트럼프는 영국 더타임스 기사를 언급하며 에스컬레이터 급정거가 고의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더타임스는 지난 21일 유엔 직원들이 예산이 떨어졌으니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작동을 멈추고 트럼프에게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말해버리자고 농담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이것을 저지른 사람들은 체포돼야 한다!”고 발끈했다.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연설 원고를 띄워주는 유엔총회장의 프롬프터(자막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초반 15분동안 유엔 측에서 준비한 종이 원고를 보며 연설을 해야 했다. 트럼프는 두 사건을 언급한 뒤 “나는 즉시 ‘와우, 먼저 에스컬레이터 사건, 그리고 지금은 프롬프터 고장이라니. 대체 이곳은 어떤 곳이지’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트럼프는 마지막으로 “연설을 마친 뒤 총회장 음향이 완전히 꺼져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멜라니아 여사도 자신에게 “당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한마디도 못 들었다”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유엔은 의도적인 방해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유엔은 자체조사를 통해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멈춘 것은 내장된 안전장치가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23일 성명을 통해 “안전장치는 사람이나 물체가 에스컬레이터에 끼거나 끌려들어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됐다”며 “(트럼프 내외보다 먼저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한) 촬영자가 우연히 이를 작동시켰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AP는 “원인과 관계 없이 유엔의 에스컬레이터가 작동을 멈추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며 최근 몇 달간 유엔 뉴욕·제네바 사무소에서 비용 절감 조치 일환으로 간헐적으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운행이 중단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세계 기구 최대 기부국인 미국의 자금 지원이 지연된데 일부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프롬프터의 경우엔 당시 백악관이 자체적으로 조작하고 있었다는 게 유엔 입장이다. 24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유엔 관계자들은 “백악관 측이 자신들의 노트북을 가져와 연설문을 로딩했다”고 말했다. 백악관 측의 조작 실수지 유엔 탓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아날레나 베어보크 유엔총회 의장은 트럼프 연설 직후 “유엔 프롬프터는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음향이 꺼졌다는 총회장 연설 역시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것이 아니라 참석자들이 각자 자리에서 통역기를 통해 수신하는 구조다. 만약 연설을 청취하려면 이어폰을 착용하고 통역 채널을 선택해서 듣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거듭 트루스소셜에서 “이는 우연이 아니다. 유엔에서의 3중 사보타주”라며 “그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미 비밀경호국이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유엔도 모든 보안 카메라 영상테이프를 보존하고 조사에 착수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