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A에게 숨 가쁜 전화가 걸려왔다. 송신자는 A가 사석에서 형이라고 부르는 법조계 선배였다. 그 ‘형’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이기도 했다. (이하 경칭 생략)
때는 2021년, 계절은 봄과 여름의 경계였다. 언론지상에는 연일 윤석열이 차기 대권에 도전한다는 기사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A는 윤석열과 인연이 깊었다. 그가 검찰총장이던 시절부터 조언자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귀밝은 법조계와 정치권 인사들은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있었다.
약속 장소에는 서너 명이 나와 있었다. 모두 서울대 법대 79학번이었다. 음식이 나오고 술이 몇 순배 돌면서 세상사와 관련된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런 요식 행위들이 끝난 뒤 본론이 나왔다.
" 너 석열이 돕고 있다며? "
A는 긍정도 부정도 않은 채 염화미소의 표정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기다렸다. 뒤이어 그 선배가 꺼낸 화제는 김건희 여사였다.
" 석열이 처랑 처가가 좀 문제인데…. "
그들은 김건희와 윤석열의 처가를 둘러싼 각종 사법 리스크가 대권 행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 야, 너도 알다시피 석열이 무기가 뭐냐. 법치, 정의, 공정 같은 거잖아. 그런데 정작 자기 가족은 깨끗하지 못하다는 공격에 노출될 경우 대권 가도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어. "
서초동 법조타운을 중심으로 나도는 풍문도 불안감의 원인이었다. 그건 사생활에 대한 루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서초동에는 “지금 언론에 리크(leak) 되는 기사 중 상당수는 김건희 작품이다. 김건희가 홍보에 깊이 개입돼 있다”, “김건희가 경솔하게도 지인들에게 ‘내 남편이 대선에 나서는데 새로운 인물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등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분위기가 무거워졌을 때 한 선배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A에게 말했다.
" A야, 네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
" 그게 뭔데요? "
그는 물 한 모금 들이켠 뒤 폭탄 발언을 내놓았다. A는 경악했다.
#장면2
2022년 1월 중순의 어느 날, 혹한을 뚫고 식전 댓바람부터 ‘윤석열 캠프’가 자리한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이들의 체온이 더해졌건만 캠프 내부는 외부의 한기가 그대로 밀어닥친 듯 썰렁했다. 아니 체감 온도는 실제의 그것보다 더 낮았다.
" 도대체 이걸 어쩌지…. "
누군가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내뱉자 모두가 동참했다. 그들을 한숨 쉬게 한 주체는 김건희였다.
선거는 추세이고 심리다. 당장의 지지율은 낮아도 바닥을 치고 오름세로 전환됐다는 신호가 있다면 캠프에는 온기가 돈다. 당시 윤석열 캠프가 그랬다. 김건희의 허위 학력 의혹이 터지면서 지지율이 급락하자 윤석열은 선대위 해체 및 전면 쇄신(1월 5일)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그게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 캠프에선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하필 그때 상상치도 못한 초대형 악재가 또 터졌다. 그 유명한 ‘김건희 7시간 통화’ 사건이었다. ‘여사’가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와 2021년 7월 6일부터 6개월간 나눈 7시간 43분 통화내용이 돌아오는 주말 MBC를 통해 공개되기로 확정된 상태였다. 캠프는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을 떠안은 듯 초비상이었다.
캠프의 전략기획 참모와 법률 전문가, 당 중진 의원들이 혹한을 뚫고 아침 일찍 캠프에 집결한 이유다. 하지만 묘수가 있을 리 없었다. 한숨과 침묵의 행진이 이어지던 바로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는 김건희의 이름과 함께 한 지명이 언급됐다. 순간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