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 이끈다…정의선호 5년 현대차그룹의 진화 [월간중앙]

중앙일보

2025.09.24 23:0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스페셜 리포트] ‘글로벌 톱3’ 안착,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 이끈다

기민한 결단력 탁월…미래차·수소·로봇으로 영역 확장
“제조업 미래는 사람과 로봇의 협업…혁신 여정 지속”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3월 26일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 등 미래 사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올해부터 4년간 미국에 26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부친인 정몽구 명예회장에 이어 2020년 10월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을 이끌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체제 이후 날개를 달았다. 정 회장 취임 2년 만인 2022년 사상 처음 글로벌 판매 3위에 오른 이후 ‘톱3’ 지위를 지키면서다. 글로벌 완성차업계는 정 회장의 탁월한 리더십과 경영 능력, 기민한 판단력과 결단력 등을 바탕으로 한 ‘퍼스트 무버’ 경영 전략을 그룹 순항의 원동력으로 꼽는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지휘 아래 글로벌 지역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전기차의 일시적 수요 감소를 극복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HEV) 라인업 등을 구축했다. 현대차그룹이 이른바 ‘모빌리티 대전환 시대’에도 세계 판매를 지속 확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퍼스트 무버’ 전략으로 활로 개척

정 회장은 1999년 자재본부 구매실장으로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이후 영업지원사업부·국내영업본부·기획총괄본부 등을 거치며 업계와 시장 흐름 전반을 파악했다. 바닥부터 탄탄히 다진 기초 체력은 훗날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함께 차세대 먹거리를 선점하는 근원이 됐다. 현대차그룹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수소 사업이 대표적 예다.

정 회장은 현대차 부회장 시절 수소전기차(FCEV) 개발을 직접 지휘했다. 현대차는 2013년 투싼 FCEV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2018년에는 FCEV 전용차인 넥쏘를 론칭하며 세계 친환경 수소차 시장을 개척했다. 현대차의 FCEV 라인업은 수소전기트럭 ‘엑시언트’, 시내용 수소전기버스 ‘일렉시티’, 고속형 수소전기버스 ‘유니버스’ 등으로 확대됐다.

FCEV로 시작된 현대차그룹의 미래 먹거리는 수소의 생산부터 저장·활용에 이르는 통합 솔루션 구축을 최종 목표로 한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유기성 폐기물로 수소를 생산하는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현대모비스는 수소지게차, 현대 로템은 수소전기트램 개발을 통한 연료전지 시스템 라인업 확대를 꾀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국내 최초로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시설을 건설 중이다. 현대제철은 수소 에너지를 활용한 그린 철강 공급을 목표로 밸류 체인을 확장하고 있다.

정 회장은 최근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차그룹은 2045년까지 모든 사업 영역에서 넷-제로(탄소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탈 탄소 목표를 명확히 설정했다”면서 “우리는 수소가 세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해결책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고 수소 사업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현대차의 고급차 라인업으로 대표되는 제네시스를 독립 브랜드로 출범시킨 것도 정 회장의 작품이다. 정 회장은 현대차 부회장 재직 당시 급성장하던 세계 고급차 시장에 주목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해당 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부터 5년간 연평균 10.5%의 성장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대중차 시장 연평균 성장률 6.0%를 웃도는 수치였다.

한국에서도 일본 도요타의 렉서스와 닛산의 인피니티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일본 고급차 브랜드가 안방을 잠식하는 걸 지켜만 보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단일 모델명으로 시작한 제네시스를 고급차 브랜드로 독립시키는 작업에 착수한 정 회장은 2015년 11월 제네시스의 재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제네시스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의 ‘미국 기술 경험 지수 조사’에서 올해까지 5년 연속 전체 브랜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현지 소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해당 조사는 자동차에 탑재된 △편의성 △최신 자동화 기술 △에너지 및 지속가능성 △인포테인먼트 및 커넥티비티 등 4개 카테고리에 포함된 40여 개 기술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고객 설문을 통해 각 브랜드의 신기술 혁신 수준과 사용 편의성 등을 평가한다.

최근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정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발 관세 폭탄에 따른 원가 상승 부담 등을 덜기 위해 세계 5위 완성차 메이커인 제너럴모터스(GM)와의 ‘동맹 카드’를 본격 가동한 것이다. 두 회사는 지난해 9월 신차 공동 개발·생산과 부품 조달 등에 협력하는 업무협약(MOU)을 맺고 세부 전략을 조율해왔다.

현대차와 GM은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모두 탑재할 수 있는 중남미 시장용 중형·소형 픽업트럭, 소형 승용차, 소형 SUV 등 4종과 북미 시장용 전기 상용밴 등 총 5종의 신차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고 지난 8월 7일 밝혔다. 현대차가 해외 완성차 기업과 공동으로 신차 개발에 나선 첫 사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12일 그룹 대표 혁신 거점으로 꼽히는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열린 타운홀미팅 뒤 HMGICS 직원들과 셀피를 촬영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관세 폭탄에 GM과 ‘신차 동맹’

현대차와 GM은 이르면 2028년부터 미국 현지에서 전기 상용밴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양사는 공동 개발 차량 양산이 본격화할 경우 연간 80만 대 이상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두 회사는 향후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추가 공동 차량 개발을 비롯해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배터리전기차,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포함한 파워트레인 시스템 전반에 걸친 협업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전통적인 생산 방식에 머물지 않는 확장성도 시장이 정 회장을 주목하는 이유다. 로보틱스, 미래 항공 모빌리티(AAM),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목적기반모빌리티(PBV) 등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 변화를 주도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신사업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분야는 로보틱스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 그룹 로봇 전문 계열사인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 등과의 글로벌 협업을 바탕으로 ‘지능형 로봇’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1992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분사해 설립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로봇 운용에 필수적인 자율주행(보행)·인지·제어 등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취임 직후인 2020년 12월 8억8000만 달러를 투자해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하기로 결정했고, 이듬해 6월 인수 작업을 모두 마무리했다. 로보틱스를 유망 미래 먹거리라고 판단한 정 회장은 사재를 들여 지분 20%를 확보하는 등 이 회사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대표하는 로봇 모델은 ‘스팟’, ‘아틀라스’, ‘스트레치’다. 스팟은 4족 보행 로봇으로, 산업 현장은 물론 화재 등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환경에서도 탐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아틀라스는 전 세계에서 인간 신체와 가장 비슷한 모습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총 28개의 유압 동력 관절을 이용해 사람과 흡사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한다. 스트레치는 무거운 물체를 스스로 옮기는 협동 물류 로봇이다. 약 23㎏ 무게의 상자를 시간당 600개씩 나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외 사업장에서 이들 로봇 모델을 활용 중이다. 독자적 로봇 개발뿐만 아니라 자율주행·인지·제어 등의 로봇 기술을 융합해 미래차·AAM·스마트 팩토리 등과 시너지를 창출하는 한편, 안전·의료 등 공공 영역에서도 사회적 역할을 해나간다는 목표다.

정 회장은 이와 관련해 “제조업의 미래를 사람과 기계의 협업으로 보고 있다”며 “기계가 반복적 공정을 처리하고 사람은 창의적이고 복잡한 작업에 집중하는 인간 중심적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자동차는 2023년 5월 18일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을 공개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포니 등을 디자인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복원 차량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사업 영토 다각화에도 공 들여

정 회장은 글로벌 사업 영토 다각화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는 중이다. 세계 1위 인구 대국 인도를 글로벌 수출 허브로 활용하는 한편, 동남아국가연합(ASEAN) 시장 공략 차원에서 인도네시아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는 전기차 생산 라인을 갖춘 체코를 미래차 시장 공략 전초기지로 택했다.

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부터 4년간 미국 투자 규모는 26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정부 정책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여러 분야에서 사업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다. 우선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270만t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한다. 철강-부품-완성차로 이어지는 밸류 체인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부품 및 물류 그룹사들도 ‘현지화’에 동참한다. 설비를 증설해 부품 현지화율을 높이고 배터리팩 등 전기차 핵심 부품의 현지 조달을 추진하는 등 완성차-부품사 간 공급망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현지 자동차 생산 능력도 확대한다. 지난해 70만 대였던 미국 완성차 생산 능력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전기차·하이브리드·내연기관 차 등 다양한 라인업을 바탕으로 현지 소비자 니즈에 더욱 신속히 대응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미래 먹거리 강화 차원에서 3만 대 규모의 로봇 공장도 신설할 계획이다. 신로봇 공장을 미국 내 로보틱스 생산 허브로 자리매김시킴으로써 향후 확대될 관련 생태계의 중심 역할을 한다는 구상이다.

한편, 올해 취임 5주년을 맞게 된 정 회장은 최근 ‘글로벌 자동차산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로 꼽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조부인 고(故) 정주영 창업회장, 부친인 정몽구 명예회장과 함께 〈오토모티브 뉴스〉로부터 ‘창간 100주년 기념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오토모티브 뉴스는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나라를 재건하고 오늘날 (한국을) 세계적 제조 강국이자 자동차 강국으로 변모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며 현대차그룹 3대(代) 경영진의 100주년 기념상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주영 창업 회장은 ‘현대’라는 이름으로 선박부터 다양한 산업군을 아우르는 거대한 기업을 세웠고, 정몽구 명예회장은 품질을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현대차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기아·제네시스 브랜드를 세련되고 혁신적인 이미지로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혁신은 인류를 지향해야 하며 진정한 진보는 사람의 삶을 향상시킬 때 의미가 있다”면서 “현대차그룹은 앞으로도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한 고객 중심의 솔루션을 통해 인류의 풍요로운 삶과 지구를 위한 혁신의 여정을 멈추지 않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