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프로야구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은 ‘불멸의 기록’ 중 하나로 꼽혔다. 1984년 롯데 자이언츠 고(故) 최동원이 세운 223개의 탈삼진. 당시 6개 구단의 100경기 체제에서 최동원은 51경기 동안 284와 3분의 2이닝을 책임지며 223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무쇠팔의 전설이 작성한 신기록은 30년 넘게 깨지지 않았다. 1986년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62)이 214개, 1996년 롯데 주형광(49)이 221개, 2001년 SK 와이번스 페르난도 에르난데스(54·도미니카공화국)가 215개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모두 최동원의 벽은 넘지 못했다.
전인미답의 고지로 자리매김하던 이 기록은 2021년에야 자리를 내줬다. 두산 베어스 아리엘 미란다(36·쿠바)가 225개의 삼진을 빼앗으면서 새로운 ‘닥터K’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미란다의 왕좌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올 시즌 두 명의 괴물 투수들이 225탈삼진을 가뿐히 넘어섰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1994년생 동갑내기 에이스 한화 이글스 코디 폰세(31)와 SSG 랜더스 드루 앤더슨(31·이상 미국)이다.
폰세와 앤더슨은 25일까지 각각 242개와 240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올 시즌 개막 17연승을 달리는 등 프로야구 마운드를 평정한 폰세는 28경기에서 174와 3분의 2이닝을 소화하며 242개의 삼진을 빼앗았다. 폰세처럼 KBO리그는 올해가 처음인 앤더슨은 29경기에서 165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면서 240탈삼진을 기록했다.
폰세와 앤더슨은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는 비슷한 유형의 파이어볼러다. 직구 최고시속이 나란히 158㎞까지 찍힐 만큼 구위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둘의 투구 스타일에는 차이가 있다. 1994년과 1997년 탈삼진 1위를 차지했던 정민철(53) 해설위원은 “폰세는 빠른 공과 다양한 변화구를 두루 활용해 경기를 풀어간다. 이와 달리 앤더슨은 뛰어난 구위의 직구를 최대한 활용하는 스타일이다. 누가 낫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각기 다른 운영으로 많은 삼진을 뺏는다”고 설명했다.
사실 올 시즌 닥터K는 폰세의 차지처럼 보였다. 8월까지 폰세가 220탈삼진, 앤더슨이 206탈삼진으로 차이가 꽤 컸다. 그런데 앤더슨이 9월 4경기에서 34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격차를 좁혔다. 이 기간 등판 간격을 넓힌 폰세는 3경기 22탈삼진을 기록해 앤더슨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일단 폰세와 앤더슨은 최소 1경기는 더 등판한다. 폰세는 선두권 일전인 28일 대전 LG 트윈스전에서 선발로 나온다. 앤더슨은 29일 인천 롯데전 출격이 유력하다. 문제는 잔여경기 일정이다. KBO가 마지막 남은 스케줄을 아직 발표하지 않은 상황. 만약 한화와 SSG가 순위 확정을 위해 막판까지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면 폰세와 앤더슨이 한 번 더 등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둘의 닥터K 경쟁은 10월에야 결판이 날 수 있다.
올해 한화의 고공행진을 이끄는 폰세는 현재 유력한 MVP 후보로 꼽힌다. 다승 1위(17승)를 비롯해 평균자책점 1위(1.85), 승률 1위(0.944)를 달리는 상황이라 탈삼진 타이틀까지 차지한다면 MVP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앤더슨 역시 SSG의 준플레이오프 직행을 위해선 마지막까지 전력투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탈삼진 1위를 양보할 수 없다.
정민철 해설위원은 “최근 구위에선 앤더슨이 앞서있지만, 그래도 개수에서 2개가 많은 폰세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한화와 SSG가 언제 순위를 확정하느냐가 관건이다. 일단 이번 주말까지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