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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유럽상의 "韓시장 외면할수도"…노란봉투법 재차 우려

중앙일보

2025.09.25 01:28 2025.09.25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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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반 후프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 회장. 사진 ECCK
한국에 진출한 유럽 기업들이 모인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가 사용자 정의를 확대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외국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교섭 대상 노조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처벌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필립 반 후프 ECCK 회장은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주한유럽상공회의소 백서 2025 발간’ 기자회견에서 “새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규제 및 시장 환경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데,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의도치 않게 위법 행위에 연루되거나 합리적인 경영상 판단이 형사처벌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며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 유럽 기업들의 우려를 전달했다. 사용자 개념이 보다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내년 3월부터 시행되는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정의를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까지 확대한다. 이렇게 되면 하청 노동자도 원청을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경제계에선 ‘실질적 지배력’의 기준이 불명확하다 보니 노동 현장에 혼선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가 2025년 백서에 담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관련 내용. 사진 ECCK

ECCK는 규제 개선 건의를 담은 백서를 통해서도 “(사용자 범위 확대는) 법적 책임의 범위를 추상적으로 확장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기업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경영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교섭 대상 노조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단체교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면, 결과적으로 한국 시장을 외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이어 “전체 근로자와 미래 세대의 일자리까지 위협할 수 있으므로, 해당 조항에 대한 재고를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ECCK뿐만 아니라 암참(주한미국상공회의소) 등 다른 주한상의도 잇달아 문제를 제기하면서 노란봉투법 시행이 자칫 외국인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2분기 외국인직접투자(FDI) 신고금액은 66억9800만 달러로, 전년 동기(82억8100만 달러) 대비 19.1% 줄었다. 실제로 집행된 금액을 의미하는 도착금액도 16.3% 줄어든 36억200만 달러에 그쳤다. 미국발(發) 관세 여파가 큰 이유인데, 국내 경영 환경마저 불안정해지면 투자 이탈이 더 가속화될 수 있다.

정부는 경제계를 상대로 “노란봉투법은 대화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법”이라고 연일 진화에 나서고 있다. 김영훈 장관은 전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업 관계자들과 만나 “대화촉진법이자 진짜 성장법”이라고 강조했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같은 날 암참·ECCK 등 7개 주한상의 대표들에게 “(노란봉투법상 우려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는 구체적인 매뉴얼과 지침을 만들어 보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노란봉투법은 시행령 위임 규정(수권 조항)조차 두지 않고 있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 ECCK 내 각 위원회 위원장들은 산업별 건의사항도 발표했다. 프랑수아 피올레 항공·방위 위원회 위원장은 “유럽과 한국은 오랜 기간 신뢰를 바탕으로 전략적 국방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절충교역 제도의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상호 신뢰와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김홍중 승용차 위원회 위원장은 “경제형벌 합리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형사처벌로 규율되고 있는 현행 자동차 평균 배출량 제도는 적절한 행정제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고, 프란츠 호튼 주류 위원회 위원장은 “현행 전자상거래 규제가 수입 주류의 온라인 판매를 배제하고 종가세와 결합되면서 시장 경쟁과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상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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