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부터 중국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다. 다음 달 1~7일은 중국에서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인 국경절 ‘황금연휴’다. 관련 업계는 ‘유커(游客·중국인 단체 관광객) 대목’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근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서 혐오 표현을 섞어가며 중국과 중국인들을 강하게 비난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일부 상인들은 “중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도 시위 때문에 불안해 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시위를 주도하는 건 ‘민초결사대’란 단체다. 최근 중국인 체류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들을 골라 연일 집회를 진행 중이다. 지난 22일에는 경기도 안산에서, 23일엔 관광객이 몰리는 서울 중구 명동에서 집회와 행진을 벌였다. 해당 시위 현장에선 “짱x”와 같은 극단적 비하나 혐오 발언 등이 계속 이어졌고, 노골적인 욕설이 적힌 팻말을 들고 다니며 외국인과 마찰을 빚기까지 했다.
오는 10월 ‘유커 대목’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던 주요 상권 상인들 일부는 이 같은 집회에 대해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유커들의 핵심 관광 지역 중 한 곳인 명동에서 K팝 관련 기념품 등을 파는 상인 이모(71)씨는 “중국인이 많이 오는 다음 달 연휴를 대비해 미리 물건을 더 들여놓을 생각”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이어 “시위가 있는 날 밤에는 매출이 확연히 줄어 드는데, 그게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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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잘 되는 시간 시위대 등장…매출 반 토막"
명동 상점가는 여행객의 활동 시간을 고려해 밤 늦게까지 가게 문을 열어 왔는데, 시위가 있는 밤에는 밤 시간대 손님이 크게 감소한다는 게 상인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는 A씨(55)는 “원래 저녁 식사 시간 이후가 장사가 제일 잘되는 바쁜 시간대였는데, 하필 시위 시간과 겹친다”며 “여름 휴가철 200만원 정도였던 하루 매출이 안 그래도 최근 반 토막 날 정도로 줄었는데, 시위 날에는 가게 앞 골목에 들어오는 손님 자체가 줄어드는 것 같아서 더 힘들다”고 전했다.
과격한 발언이 쏟아지는 이런 시위가 중국인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외국인 방문객들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중국인보다 일본이나 유럽 쪽에서 온 관광객이 다수다. 어떤 나라에 대한 것인지를 떠나서, 시위 자체에 대한 불안감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시위대에 휘말려 불상사가 날까 걱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명동에서 포장마차 노점을 하는 B씨 역시 “간식을 먹는 외국인 손님 바로 옆으로 시위대가 극단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지나가니까 손님들이 놀라서 유심히 보더라”라며 “미안하고 불편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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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감 조성에 국격 실추"
업계 우려가 커지자 명동관광특구협의회는 남대문경찰서에 “시위대가 특정 국가 관광객을 겨냥해 폭언을 해서 공포감을 조성하는 등 국가 이미지를 실추하고 있다”며 명동 내 시위 제한을 요청했고 경찰은 시위대의 명동 진입을 막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혐오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발언을 하는 일부 시위 참가자와 관광객 간 마찰이 없도록 대응하는 방법이 지금으로써는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특정 국가 대상 시위가 국익이나 국가 이미지 전반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중국 현지에서 이미 한국의 혐중 시위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유커들을 관광 경쟁국인 일본에 뺏길 가능성이 커지고 한국 내수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는 “시위가 외교적 갈등으로까지 비화하거나 외국인 안전이 침해될 정도로 폭력성·위험성이 있다면 적극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민석 국무총리는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에서 국가관광전략회의를 열고 “특정 문화와 종교, 국가에 대한 혐오와 과격한 시위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총리는 “관광은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가장 힘 있는 다리”라며 “국민 여러분도 친절과 배려, 성숙한 시민의식을 함께 실천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