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사진)에게는 베토벤의 루돌프 대공 같은 유력한 후원자가 없었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재능을 알아보고 십시일반 도우려 했던 시민들은 꽤 많았다. 그들 중에는 소프라노 안나 밀더 하우프트만도 있었다. 슈베르트의 작품을 베를린 무대에서 자주 불러 작곡가가 알려지는 데 기여한 그녀는 그에게 신작 한 곡을 위촉했고, 슈베르트는 최후의 병석에 앓아눕기 직전에 작품을 완성해 베를린으로 부쳤다. 1828년 11월 9일, 곧 그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열흘 전의 일이었다.
‘겨울 나그네’와 ‘백조의 노래’ 등을 듣다 보면 슈베르트가 절망 속에서 세상을 떴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최후의 작품 ‘바위 위의 목동’에는 그리움, 신실함, 다정한 희망 등 슈베르트의 가장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면이 여전히 녹아 있다.
목동은 계곡에서 노래한다.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노래를 메아리가 아득한 심연에서 증폭하여 되돌려주는 시적 광경이다. 소프라노와 클라리넷은 서로가 서로에게 메아리가 되어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을 상승시킨다. 예술가의 깊은 고독감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시적 화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봄을 맞이하겠다고, 새로이 방랑을 떠나겠다고 노래하기 시작한다. 천진하고도 순진한 목동의 노래가 그간의 어두움을 일거에 흩어놓는다. 넓은 음역을 가지는 클라리넷은 익살스럽고 민속적이다. 성악은 우아한 기교를 방랑자 발걸음에다 풀어 놓는다.
절망은 결코 그의 종착점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헨델의 대위법을 연구하려 했던 서른한살 청년, 새로 쓸 오페라 대본을 부탁하고, 소설가 제임스 패니모어 쿠퍼의 작품을 더 읽고 싶어 했던 그는 여전히 희망을 꿈꿨던 영원한 방랑자였다. “여기 음악이 그 풍성한 소유보다 더 아름다운 희망을 묻었노라.” 그릴파르처가 그의 묘비에 남긴 시구는 진실하다. 때 이른 죽음을 넘어 우리는 그의 희망을 기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