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리오 쿠오크만(43)이 이런 답을 보내왔을 때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는 2020년부터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홍콩필)의 상주 지휘자로 일하고 있다. 홍콩필은 최근 10여 년 동안 아시아에서 선두로 떠오르는 오케스트라다. 오케스트라의 특징에 대한 질문에 그가 ‘다양성’을 내세웠다. 홍콩은 동서양이 함께 하는 역사와 문화가 있으니 오케스트라의 구성원이 다양한 것도 당연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인다.
그라모폰이 인정한 홍콩필
다양성이 가장 큰 경쟁력 원천
개성들이 조화돼야 좋은 악단
하지만 자세히 보니 놀라웠다. 홍콩필 단원들의 국적을 정확히 따져봤을 때다. 이들은 다음 달 19일 한국 공연을 위해 내한한다. 이번 공연을 주최하는 서울 예술의전당의 집계에 따르면 내한하는 단원 중 홍콩 사람이 44명으로 가장 많다. 그다음은 미국으로 22명이다. 그리고 영국·중국·호주가 각 4명이다. 일본인은 3명, 대만·스페인 국적이 각 2명이다. 그리고는 한국·태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10개 국적의 단원이 각 1명이다. 조지아와 리투아니아 사람까지 단원으로 연주하고 있다.
종합하면, 총 110명의 국적이 18개이고, 홍콩 국적은 40%로 절반이 되지 않는다. 유럽이나 미국의 오케스트라라면 몰라도, 아시아의 오케스트라에서 이 정도의 다양성을 가진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단원 96명 중 비(非) 한국 국적 단원은 10명(10.4%)이다.
홍콩필은 영국 음반 전문지인 그라모폰의 뮤직 어워즈에서 2019년 올해의 오케스트라 상을 받았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대작인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모두 라이브 녹음한 음반의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아시아 오케스트라로는 처음 이 상을 받으면서 홍콩필은 주목받는 악단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원인에 대해 여러 가설이 있다. 2012년부터 오케스트라를 12년 이끌었던 ‘호랑이 지휘자’ 얍 판 츠베덴의 리더십과 기획력, 홍콩필을 객원 지휘하거나 함께 연주한 세계적인 음악가들, 그간 발매했던 성공적인 음반들, 52년이라는 역사, 부지런히 계속해온 세계 투어, 또 홍콩 정부의 재정 지원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그 와중에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생각보다 간과돼 왔다. 하지만 지휘자 쿠오크만의 분석과 실제 단원들의 국적을 살펴보고 나면 다양성이야말로 가장 큰 원동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의 오케스트라들과 비교했을 때 홍콩필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홍콩필과 함께 하는 쿠오크만 자체도 다양성의 상징인 지휘자다. 그는 마카오에서 태어나 4세에 클래식 공연을 처음 보고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반했다. “당시 오케스트라에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마카오 연주자보다 많았어요.” 그는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이주해 피아노로 음악 공부를 계속했고, 이후 미국 줄리아드·커티스·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지휘와 피아노를 동시에 익혔다. “미국에서 유럽의 전통을 흡수했다. 나의 스승은 유럽 음악의 계보에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렇게 그는 중국·유럽·미국의 문화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가 4세에 처음 봤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이 세 곳 중 어디도 아니고 더 먼 나라인 브라질의 베이가 하르딤이었다.
이런 음악가와 음악 단체에 ‘중국인 최초’ ‘아시아 단체 최초’라는 지칭 자체가 어색할 정도다. 쿠오크만 또한 “나의 경력에서 ‘중국인’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음악만이 국제적인 언어라 믿는다”라고 했다. 홍콩필과 더불어 이런 정체성의 음악가들이 세계에서 뻗어 나가는 데에 다양성이 미친 영향을 더 진지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케스트라는 단원끼리 무조건 화합하고 비슷한 소리를 내야 아름다울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케스트라의 전통을 존중할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온다. 모두가 똑같이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데도 함께 할 때 아름답다. 실제로 한 국가가 겪는 문제는 인구 감소가 아니라 다양성 감소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비슷한 사람끼리 갈등 없이 사는 것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야 발전이 있다고 말이다. 공연장의 무대 위에도 그 증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