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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Food] 여백의 말들 손끝과 AI 사이 농업 미래를 그리다

중앙일보

2025.09.25 13:30 2025.09.2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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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좋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작은 농가를 짓고, 고객 하나하나의 건강 정보를 분석해 맞춤형 체험과 음식을 제공하는 치유농장을 상상해봤다. 간에 좋은 식재료는 무엇일까, 면역력에는 블루베리가 적합하겠지, 어떤 요리를 내야 할까, 손님 개개인의 건강 상태는 어떻게 확인하지 … 병원 소견서를 가져오라고 해야 할까. 상상만으로도 숨 가쁘게 질문들이 쏟아진다. 현실로 만드는 일은, 상상조차 쉽지 않다. 특히 소규모 운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누가 그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데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공공데이터 활용 창업경진대회에서 이런 상상을 현실로 바꿀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네츄르먼트의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기반 메디&힐링푸드 분석·자동설계 시스템이다. AI가 농식품 공공데이터와 계절별 작물, 영양·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개별 고객 맞춤형 체험 프로그램과 건강 메뉴를 자동으로 설계해준다. 개발만 된다면, 작은 농가와 소상공인도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손쉽게 맞춤형 치유 체험과 건강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

다른 수상작들도 흥미롭다. 액티브펫팀은 반려동물 사진을 분석해 비만도를 판별하고, 맞춤형 간식과 운동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유천케어팜유한회사팀은 식물품종지킴이 서비스를 통해 품종 보호 등록 여부를 확인하고, 대체 품종을 추천했다. 꿀벌 실종 예측 서비스는 병해충과 기상 데이터를 분석해 농가의 대응력을 높였다.

이 아이디어들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모두 공공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공공데이터를 활용하면 초기 비용과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할 가능성이 커진다. 더 나아가, 이러한 데이터 기반 솔루션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될 수 있다. 농업 분야도 해외에서 유사한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아, 바로 솔루션 적용을 검토할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가능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식물의 미생물을 활용해 농작물 수확량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농법을 실현하는 미국의 인디고 애그리컬처(Indigo Agriculture)는 초기 정부 지원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십억 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플렌티(Plenty)와 에어로팜(AeroFarms) 등 수직농장 스타트업은 스마트팜과 데이터 분석을 결합해 기후 위기와 식량 문제 해결을 목표로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기술, 시장, 자본을 연결하는 생태계 안에서 성장하며, 혁신 아이디어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관점이다. 국내에서는 농업을 전통적 1차 산업이나 보호 산업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강하다. 이 때문에 데이터 기반 혁신이 실질적 산업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반대로 해외는 농업을 미래 산업과 기술 산업의 결합으로 보고, 민간 투자와 글로벌 네트워크로 이를 적극 지원한다. 앞에 K만 붙이면 통하는 시대다. 농업도 이 물결에 올라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려면, 기술과 창의성이 결합된 미래 산업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원래 우리 민족은 활을 잘 쏘는 것만큼이나 농사도 잘 지었다. 자연과 땅을 잘 달래며 다루는 유전자의 힘을 믿고, 큰 꿈을 꿔봐도 되지 않을까.



황정옥([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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