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취재|카리브에서 30여 년간 펼쳐진 ‘남북 외교전’ 비사(祕事) 극비리에 진행된 한·쿠바 수교에 바티칸과 학계 인맥까지 총동원 니카라과 거쳐 수리남까지…중남미·카리브 달군 남북 외교전쟁
2023 년 8월 첫째 주 어느 날. 인천공항 입국장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라틴계 남성이 나타나자 기다리던 한국인들이 서둘러 그를 안내해 공항을 빠져나갔다. 미수교 공산국가 최고지도자의 ‘심부름꾼’이 한국 땅을 밟는 순간이었다. 겉보기엔 평범했지만, 그는 ‘수교’라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인천 땅을 밟았다. 언론에 노출될 경우, 남북에 몰고 올 파장이 작지 않았다.
주인공은 쿠바에서 날아온 ‘호세 라몬 카바냐스 로드리게스’. 중남미-카리브 외교가에선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다. 쿠바 외교부 산하 연구기관인 쿠바국제정책연구센터(CIPI)의 원장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격이다.
로드리게스의 직책보다는, 그의 이력이 그가 얼마나 막중한 임무를 안고 한국에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로드리게스가 중남미-카리브 외교가에서 전설로 통하는 이유는 2015년 쿠바·미국 재수교를 이뤄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쿠바는 1961년 1월 미국과 단교했다. 54년간 냉전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다 2015년 7월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54년에 걸친 냉전 관계를 청산했다. 로드리게스는 쿠바·미국 재수교 이전에는 주미 쿠바 이익대표부 대표를, 수교 이후에는 초대 주미대사(2015~2020년)를 지낸 미국통이다. 반세기 만에 역사에 남을 외교적 성과를 얻어낸 그는 쿠바 외교가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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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쿠바 수교’ 주역 학술회의 위장 방한해 삼청동행
그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 정부의 최대 골머리는 철저한 보안 유지였다. 인천공항의 수많은 눈을 어떻게 피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인천공항은 파파라치는 물론, 각국에서 파견나온 정보요원들도 상주한다. 외교부는 ‘학술회의’로 위장했다. 만에 하나 로드리게스의 방한이 드러나더라도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로드리게스 일행의 공식 일정은 서울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열리는 학술회의 참석뿐이었지만, 그의 ‘미션’은 다른 곳에 있었다. 쿠바 정부는 그에게 한국 정부의 입장을 타진하라는 밀명을 내렸다.
서울에 도착한 로드리게스는 학계 인사의 주선으로 삼청동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향했다. 만찬장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로드리게스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과 수교가 이뤄졌을 때 북한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할 것이냐였다. 긴장이 풀린 것은 식사를 마칠 무렵 박진 장관이 쿠바 음악을 틀어놓으면서부터였다. 대학생 시절 스페인어를 독학한 박 장관이 스페인어로 인사말을 건네자 로드리게스는 그제서야 다소 긴장을 늦추고 속내를 털어놨다.
대화의 핵심은 분명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한·쿠바 수교를 성사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이후 로드리게스는 오영주 당시 외교부 2차관과도 회동했다. 이토록 로드리게스가 북한을 의식한 이유는 쿠바와 북한이 ‘형제국’으로 부를 만큼 가깝기 때문이다.
북·쿠바의 역사는 김일성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델 카스트로는 1986년 김일성의 초청으로 대표단을 이끌고 직접 평양을 방문했다. 최근에는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공산당 제1서기 겸 대통령이 2018년 11월 국가평의회 의장 자격으로 방북,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다. 따라서 북한과 적대적인 한국과 수교한다는 건 쿠바에 상당한 정치·외교적 부담이다.
북한은 이미 한국과 쿠바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터였다. 박 장관이 2023년 5월 과테말라에서 열린 카리브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호세피나 비달 쿠바 외무차관과 만난 게 언론을 통해 보도됐기 때문이다. 카바냐스 로드리게스와의 회동 한 달 뒤인 9월엔 미국 뉴욕에서 브루노 로드리게스 파리야 외무장관과 비공개 회담도 계획돼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삼청동 회동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했다.
박 장관과 로드리게스의 삼청동 회동 전후로 한국 정부는 수교 물밑작업을 전방위에 걸쳐 시작했다. 가용 인적 채널을 총동원했는데, 대표적인 게 바티칸 교황청 네트워크였다. 박 장관은 로드리게스와의 회동 직전인 2023년 8월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바티칸시국 총리 격)을 만나 “쿠바와 수교”를 언급하며 협력을 요청했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 취재를 종합하면, 박 장관의 요청을 받은 파롤린 국무원장은 프란시스코 교황이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공산당 제1서기 겸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사이란 점을 언급하며, 한-쿠바 수교를 도와주겠다고 화답했다. 교황청 외무장관인 폴 리처드 갤러거 대주교도 힘을 보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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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번째 수교국 되기까지 종교·학계 등 전방위 외교
박 장관과 오현주 당시 바티칸 대사(현 국가안보실 제3차장)도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천주교 신자인 오현주 3차장은 한-쿠바 수교 논의가 본격화한 2023년 1월 바티칸에 부임, 양국 간 수교를 바티칸에서 조율했다.
학계와 외교 네트워크도 가세했다. 쿠바 측에선 미리암 니카도 가르시아 쿠바 아바나대학교 총장이, 한국 측에선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가 수교에 깊이 관여했다. 가르시아 총장은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공산당 내 목소리가 큰 인물이다. 가르시아 총장은 쿠바 현지에서 한-쿠바 수교 직전까지 양측 의견을 조율했다.
쿠바 인근 국가인 멕시코 채널도 가동됐다. 박 장관과 친분이 두터운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전 멕시코 외무장관이 대표적이다. 에브라르드 전 장관은 멕시코시티에서 박 장관과 회담하던 지난 2023년, 즉석에서 쿠바 외무장관에게 전화해 우리 정부의 수교 의사를 전달하고 과테말라 회동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전방위적인 움직임은 중남미 외교가에도 포착됐다. 2023년 8월, 중남미 외교가에는 에밀리오 로사다 가르시아 쿠바 공산당 국제부장(대외부장)이 ‘전격 방한’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쿠바 공산당 국제부장은 북한 노동당과 외교를 전담한다. 따라서 그의 방한설은 쿠바의 대(對) 한반도 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거란 암시를 내포하고 있었다. 수교 실무 업무는 내각인 외무부가 담당하지만, 공산당 국제부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가르시아 국제부장 방한설은 이내 루머로 확인됐다. 그러나 그가 수교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공산당 국제부장은 북한을, 외무부는 한국을 담당하는 쿠바의 투트랙 전략 때문에 직접 나서지 않은 것뿐이다. 대신, 쿠바는 공산당 국제부장이 한국 측에 묻고 싶은 내용을 로드리게스를 통해 확인했다. 로드리게스만으로 한계가 있을 때에는 가르시아 아바나대학교 총장이 물밑에서 역할을 했다.
한국의 전방위 외교와 쿠바의 투트랙 전략은 적중했다. 2024년 2월 14일 미국 뉴욕에서 양국 주유엔대표부가 공식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했다. 이로써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다. 이후 한국은 아바나에, 쿠바는 서울에 각각 대사관을 개설했다.
극비리에 진행된 양국 수교에 뒤통수를 맞은 북한은 수교 발표 직후 마철수 주쿠바 대사를 소환했다. 쿠바에 불만을 제기하면서 한·쿠바 수교 진전을 막지 못한 쿠바 대사관에 대한 질책의 의미였다. 이후 북한은 고위급인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 한수철을 신임 쿠바 대사로 임명했다. 대사관 규모와 활동 반경도 한·쿠바 수교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현재 주쿠바 북한대사관은 한수철 대사와 류수남 참사관 체제로 가동되고 있다. 쿠바와 돈독한 관계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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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한국 대사관 폐쇄’ 북한의 외교적 응수?
하지만 북한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북한의 반격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한·쿠바 수교 두달 뒤 니카라과 정부는 돌연 주한 니카라과대사관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제니아 루스 아르세 세페다 주한 니카라과 대사조차 철수(4월 24일) 발표 이틀 전에 알았을 만큼 극비리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결정이었다.
심지어 철수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기 이틀 전까지만 해도, 세페다 대사는 지인들과 그 달 27일 광화문에서 열릴 오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였다. 니카라과는 쿠바 인근의 독재국가로, 중남미의 대표적인 반미 국가 중 하나다. 니카라과는 한국 대사관 철수에 이어 북한과 상호 대사관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로선 허를 찔린 것이다.
그 여파는 컸다. 민재훈 주니카라과 대사와 한병진 당시 외교부 중남미국장은 ‘니카라과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좌천됐다. 한병진 국장은 국립외교원 경력교수로, 민재훈 대사는 서울로 소환됐다가 각각 파나마 대사와 독일 본(Bonn) 분관장(겸 총영사)으로 이동했다. 중남미 외교가에선 주한 니카라과대사관 철수가 오르테가 정권 내부 사정에 의한 것으로 보고 한·쿠바 수교와 무관하다는 해석이 우세했지만, 남북이 일진일퇴의 외교적 공방을 치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쿠바와 니카라과에 이어 남북의 세 번째 카리브 외교전쟁 무대는 ‘수리남’이었다. 국내에는 낯설지만, 30여 년 전부터 남북이 치열한 외교 경쟁을 펼쳐온 무대다. 이런 사실은 2022년 〈머니투데이〉가 외교부의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입수해 보도한 내용을 통해 알려졌다. 1991년 8월 수리남 주재 김교식 한국대사가 서울 본부에 보고한 내용이다. 당시 김교식 대사는 수리남 정부와 국회 관계자들을 만나 북한 대사 신임장 제정 중단과 수리남 대통령 취임식 경축사절 제외를 위해 로비를 펼쳤다. 결국 이런 노력으로 임기택 북한 대사는 1년 넘도록 수리남 정부로부터 신임장을 받지 못했다.
한국과 수리남 관계 변화를 촉발한 것은 엉뚱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이 방영되면서 수리남 정부가 강하게 반발한 거였다. 알버트 람딘 당시 수리남 외무장관은 드라마가 자국을 마약천국·우범지역으로 묘사한 것을 두고, 우리 측에 불만을 표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중남미 현지 외교가 인사는 “찬드리카퍼사드 산토키 수리남 대통령(2020~2025년 재임)은 람딘 장관에게 ‘넷플릭스 사태를 어떻게든 단기간에 해결하라’고 지시했다”며 “람딘 장관이 주위에 조언을 구하러 다닐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박 장관은 오해 없도록 해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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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남북 외교 경쟁무대 수리남과의 뜻밖의 반전
람딘 장관은 한국 측에 주수리남 대사관 개설을 요구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993년 주수리남 대사관을 철수, 대신 이웃 주베네수엘라 대사관에서 관할해오고 있다.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서 람딘 장관이 박 장관에게 정식으로 주수리남 대사관 개설을 요청했다. 박 장관은 수리남 측 요구에 우선 대사관보다 한 단계 아래인 분관 개설을 역제안했다.
드라마가 양국 외교 문제로 비화해 난감했던 한국 정부에게 있어서 수리남 측 요구가 꼭 부담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상황이 양국 경제 협력의 계기가 될 것으로 봤다. 수리남은 인구 62만 명에 불과하지만, 바다에서 대량 유전이 발견되면서 새로운 에너지 강국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따라서 에너지 개발 분야에서 협력한다면 수리남과 이렇다 할 경제 협력 활동이 없는 북한을 누르고 카리브에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외교부가 수리남에 개설하기로 한 분관은 아직 진행형이다. 2023년 당시 한국 정부가 발표한 12개 국가 재외공관 신설 계획 중 절반인 여섯 곳이 남았다. 수리남 해양 유전의 상업 생산 개시가 예상되는 2028년을 기점으로 양국 경제 협력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리브해에서 펼쳐진 남북 외교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쿠바 수교로 시작해 니카라과, 수리남의 반전까지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며 중남미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