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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명리학이 AI에게 묻다 “당신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OSEN

2025.09.2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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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능력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매달려왔다. 문명이 복잡해지고 사회가 거대해질수록 이 질문은 더욱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누가 더 똑똑하고, 누가 더 적합하며, 누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하는가. 20세기 초, 이 난제에 대한 해답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지능지수(IQ)였다. 마치 시대의 구원자처럼, IQ는 복잡다단한 인간의 정신 활동을 단 하나의 숫자로 환원했다. 그 발상은 효율성과 합리성을 숭배하던 근대 사회의 갈망과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학교의 성적표부터 기업의 인재 선발, 심지어 국가의 인력 배치까지 그 영향력 아래 놓였다.

그러나 모든 열광의 이면에는 불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과연 인간의 가치가 하나의 숫자로 온전히 표현될 수 있는가? IQ는 언어, 수리, 논리 등 좌뇌의 영역을 능숙하게 재단했지만,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하는 시와 그림, 타인의 눈빛에서 읽어내는 슬픔, 그리고 위로의 손길 같은 비수치적 가치는 그 시험지에 결코 담기지 않았다. 그 반성에서 태어난 개념이 바로 감성지수(EQ)다. 1990년대 다니엘 골먼은 인간의 진정한 성공과 행복이 단순히 IQ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타인을 공감하며 관계를 성숙하게 가꾸는 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만약 IQ가 세상을 분석하는 예리한 칼이라면, EQ는 세상을 살아내는 따뜻한 체온에 가까웠다. IQ가 길을 그려주는 지도라면, EQ는 그 길 위를 걸어가는 굳건한 발걸음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서양 심리학의 깨달음이 동양의 전통적 사유와 깊은 공명을 이룬다는 점이다. 현대 심리학의 성격 5요인(Big Five)과 동양 철학의 음양오행이 그 대표적인 예다. 오행이 만물의 근원 질서를 목(성장), 화(열정), 토(균형), 금(결단), 수(지혜)라는 다섯 가지 기운으로 설명하듯, 현대 심리학 또한 인간의 성격을 개방성, 외향성, 성실성, 우호성, 신경성이라는 다섯 가지 축으로 설명한다. 이 둘의 관계는 기계적인 일대일 대응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질을 다섯 가지 틀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은 인류 보편의 지혜를 느끼게 한다.

더 나아가, 사주명리학의 정밀한 해석틀인 십성(十星)은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과도 교차한다. 비견·겁재(자아의식), 식신·상관(창조와 표현), 정재·편재(물질과 관계), 정관·편관(규범과 도전), 정인·편인(학습과 직관)으로 이루어진 십성은 인간의 삶을 열 가지 관계망으로 풀어낸다. 이는 가드너가 인간의 지능을 언어, 논리, 음악, 신체 등 여덟 가지로 나눈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서양 심리학은 수학적 모델로, 동양 명리학은 자연철학적 은유로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 '인간의 능력은 단일 차원이 아닌 다차원적 구조'라는 같은 진실을 발견했다.

IQ가 논리, 분석, 계산 등 좌뇌의 빛에 치중한다면, EQ는 감정, 직관, 공감 등 우뇌의 그림자에 주목한다. 그러나 명리학은 이 이분법을 넘어선다. 음양오행은 인간을 쪼개는 것이 아니라, 생극제화(生剋制化)의 작용을 통해 순환하는 하나의 질서로 본다. 분석과 직관, 좌뇌와 우뇌는 대립이 아니라 서로를 낳고 제어하며 균형을 이루는 관계라는 깨달음이다.

오늘날 인공지능(AI)은 다시금 'IQ적 사회'의 귀환을 예고하는 듯하다. AI는 연산과 데이터 분석에서 인간을 압도하며, 삶의 모든 것을 숫자로 환원하려 한다. 그러나 AI는 공감하지 못하고, 윤리를 세우지 못한다. 이때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EQ와 더 나아가 사주명리학이 품은 인간학적 지혜다. 명리학의 언어로 비유하자면, 나무가 자라려면 흙의 자양분이 필요하고, 불이 타오르려면 물의 은혜가 필요하듯, 인간은 오행의 균형 속에서만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

결국 21세기 인류가 붙잡아야 할 메시지는 간단하다. 사람은 IQ라는 숫자가 아니라, EQ와 도덕, 그리고 오행의 조화로 완성된다. 사주팔자는 단순한 운명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이는 불처럼 타오르고, 어떤 이는 물처럼 흐른다는 것을 비추는 거울이다. 불은 스스로를 태워 없앨 수 있고, 물은 길을 잃으면 고여 썩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불은 물을 만나 따뜻함을 얻고, 물은 불을 만나 활기를 얻는 것이다. 서양 심리학은 이를 수치와 모델로 설명했고, 동양 명리학은 이를 자연의 은유로 그려왔다. 서로 다른 길 위에서 결국 같은 진실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AI가 우리의 턱밑까지 밀려와 우리를 숨가쁘게 하고 있다. 명리학도 AI의 태풍에 마구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안간힘을 다해 인간다움에 대한 마지막 고지를 사수하으려 하나 아무래도 힘겨워 보인다. 그래도 우리는 말해야 한다. "IQ에서 EQ로! 좌뇌에서 우뇌로! 수치에서 관계로! 계산에서 지혜로!" 이 길 위에서 우리는 동양의 명리학을 다시 본다. 더 인간다운 인간으로, 더 온전한 존재로 살아가라는 준엄한 명령을….  /여수 남다른

※ 외부 필진의 기고는 OSEN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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