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국적 갑자기 中으로 바꿨다…대북제재 '덕성호' NLL 넘은 속내

중앙일보

2025.09.25 23:13 2025.09.26 00:19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정부가 북한산 석탄의 불법적인 해상환적에 관여한 홍콩 선사 'HK이린'과 북한 선박 '덕성'호를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고 지난해 7월 18일 발표했다. 사진은 대북 제재 위반 선박인 HK이린 무국적 선박 더이오 동선 위성 이미지. 국정원 제공·연합뉴스
정부의 독자제재 명단에 올라있는 북한 선박인 ‘덕성호’가 26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하하다가 군의 경고방송·사격 이후 서해 공해상으로 빠져나갔다. NLL을 넘은 덕성호는 중국 국적 선박으로 위장하려는 시도도 보였는데, 군 당국은 이번 일이 북한 당국 차원의 떠보기식 도발인지 우발적 침범인지를 놓고 분석 중이다.

26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덕성호가 NLL 부근으로 남하하는 항적이 군 당국의 감시·탐지 자산에 포착됐다. 북한 남포항을 출발한 덕성호는 두 시간 여를 남하, 오전 5시 6분쯤 NLL을 넘었다.

이에 우리 해역에 작전 중이던 해군의 호위함 천안함(FFG-Ⅱ·2800t)이 덕성호에 접근, 20여 차례 경고 방송을 한 후에도 남하가 계속되자 경고 사격으로 대응했다. 기관포·함포 등 60여발을 사격했다. 덕성호는 NLL 이남 5㎞, 우리 군의 해양통제구역(MCA·Managed Control Area) 안쪽 9㎞까지 들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서해 공해상으로 방향을 틀어 오전 6시 10분쯤 MCA를 벗어났다.

군 관계자는 “경고 방송·사격은 통상의 작전수행절차에 따른 조치”라며 “우리 군은 어떤 상황에도 단호히 대응해 NLL을 수호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덕성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 선박으로 정부의 독자 제재 리스트에 이미 올라있는 선박이다. 길이 140m, 폭 20m으로 북한이 보유한 대형 상선이다. 덕성호에 대응한 천안함이 길이 122m, 폭 14m란 점을 고려할 때 상당한 규모란 점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홍콩 선사의 무국적 선박 ‘더이호’와 서해상에서 석탄 4500t을 불법 환적한 혐의로 덕성호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덕성호는 2023년 3월 북한에 반입된 중고 선박이기도 한데, 선박의 대북 이전 또한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한다.

덕성호는 특히 NLL을 넘은 후 선박자동식별장치(AIS)상 국적 표기를 북한에서 중국으로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AIS 기록은 주변 선박들에 초 단위로 송신이 이뤄지는 만큼 특정 시점에 갑자기 배의 국적을 바꿔 기록을 송출했다는 건 본래 국적을 숨기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천안함이 경고 방송 등을 위해 근접했을 땐 중국 국적기인 ‘오성홍기’를 달고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덕성호는 군의 교신 시도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군의 신형 호위함 천안함(FFG-Ⅱ, 2,800톤급). 2023년 12월 해군 2함대사령부에 작전배치됐다.  해군·뉴스1

덕성호의 이런 행적은 우발적 침범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또 다시 ‘선박 대 선박’의 불법 해상 환적 등을 시도하려 출항했다가 NLL을 넘은 사실을 인지하고 국적을 급히 바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에 따르면 당시 NLL 부근에는 중국 어선 10여척이 몰려 있었는데, 이들을 우회하기 위해 NLL을 넘었을 여지도 있다.

동시에 덕성호는 이미 과거에도 서해상에서 불법 환적을 했던 ‘전과’가 있다는 점에서 굳이 NLL 이남으로 방향을 잡아 지속적으로 남하했다는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북한 당국 차원에서 우리 군의 대비 태세와 대응 수위를 떠보기 위한 목적이 있을 수도 있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한 뒤 “NLL은 유령선(線)”이라며 NLL을 무력화 하는 발언을 했다. 공식 발표는 안 했지만 북한 당국은 새 해상 경계선 개념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덕성호가 이를 기준으로 활동하다가 NLL을 침범했을 수도 있다.

앞서 24일 서북도서방위사령부는 해병대 제6여단 등과 함께 연평도 해상사격장에서 K9 자주포 170여발을 NLL 이남 해상으로 사격하는 훈련을 진행했다. 이와 관련한 시위 성격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군에 따르면 앞서 2022년, 2023년에도 각각 북한 상선과 경비정이 NLL을 넘은 적이 있다. 이 때도 군은 작전수행절차에 따라 경고 방송-사격 순으로 대응했다.



이유정([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