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고성환 기자] 오현규(24, 헹크)가 결승골의 주인공이 되고도 마음 편히 웃지 못했다. 그는 기뻐하는 대신 자신이 놓쳤던 기회들을 되돌아보며 반성했다.
헹크는 26일(한국시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이브록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2026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 리그 페이즈 1차전에서 레인저스를 1-0으로 제압했다.
험난한 승리였다. 헹크는 전반 41분 레인저스 미드필더 모하메드 디오망데의 퇴장으로 수적 우위를 점했다. 게다가 전반 추가시간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리드를 잡은 채 후반에 돌입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키커로 나선 오현규의 슈팅이 골키퍼 선방에 막히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오현규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고, 후반 10분 좋은 침투에 이은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트렸다. 그는 후반 25분에도 영리한 움직임으로 골망을 갈랐으나 비디오 판독(VAR) 끝에 동료의 오프사이드로 득점 취소됐다. 오현규의 멀티골은 무산됐지만, 헹크는 남은 시간을 실점 없이 마무리하며 1-0 승리를 챙겼다.
[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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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규로선 지옥과 천당을 오간 경기였다. 그는 전반 18분에도 골문 앞에서 완벽한 득점 기회를 맞았지만, 논스톱 슈팅이 골대 위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대로 잔디에 얼굴을 파묻고 좌절한 오현규는 이후 페널티킥까지 놓치면서 고개를 떨궜다.
다행히 오현규는 3번째엔 실수하지 않았다. 후반 들어 심기일전한 그는 결승골을 뽑아내며 속죄에 성공했고, 유니폼 상의를 벗어던지며 크게 포효했다. 정말 간발의 차로 동료가 수비 라인보다 앞서 있지 않았다면 멀티골까지 터트릴 뻔했다.
경기 후 축구 통계 매체 '풋몹'은 오현규에게 평점 7.7점을 줬다. 그는 교체되기 전까지 80분간 피치를 누비며 슈팅 7회, 기회 창출 1회, 드리블 성공 1회 등을 기록했다. 다만 빅찬스미스를 4차례나 기록하면서 기대 득점(xG) 2.78에도 한 골밖에 넣지 못한 점은 보완해야 할 대목이다.
그럼에도 오현규가 주저앉지 않고 기어코 득점한 건 긍정적이다. 헹크는 "오현규가 팀에 보답하면서 우리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그는 700명의 원정 팬들 앞에서 '이제 그만!'이라고 외쳤다. 스코틀랜드에서 펼쳐진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라며 "이번 승리는 푸른 심장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큰 기쁨이다. 신트트라위던과 더비전을 앞두고 든든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OSEN DB.
워낙 다사다난했던 경기였던 만큼 오현규도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헹크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한 영상 속 오현규는 진이 빠진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쉬고 있었다. 이를 본 구단 관계자가 다가가 힘든 경험이었겠지만, 괜찮다고 위로했다. 그러자 오현규는 "만약 내가 감독이었다면 전반이 끝난 뒤 나를 교체로 뺐을 것"이라며 헛웃음을 지은 뒤 장탄식을 내뱉었다.
농담을 던지면서도 좀처럼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한 오현규. 그는 한숨을 내쉰 뒤 "이게 내 일이다. 힘들다. 스트라이커는 언제나 그렇다. 기회를 너무 많이 놓쳤지만, 그냥 팀을 위해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득점했고, 우리 팀이 이겨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오현규는 한숨을 내쉬는 등 여전히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벨기에 'HNL'에 따르면 오현규는 언론 인터뷰에서도 울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전반전은 정말 힘들었다"라며 침을 삼킨 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골을 넣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저 팀 동료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공격수다운 자신감도 드러냈다. 오현규는 "페널티킥을 내가 차야 하느지 망설였냐고? 아니다. 난 내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게 내 일이다. 나는 스트라이커다"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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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 이적 무산의 아픔도 아직 남아있는 오현규다. 그는 올여름 슈투트가르트 입단을 눈앞에 뒀지만, 메디컬 테스트까지 마친 뒤 모든 게 취소됐다. 표면적 이유로는 오현규의 십자인대 문제가 언급됐지만, 슈투트가르트 측에서 막판에 이적료를 낮추려 하고 임대를 제안하는 등 재협상에 나선 게 결정적 원인으로 알려졌다.
오현규는 "골을 넣은 뒤 모든 감정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 감정적이었고, 지금도 울 것만 같다. 슈튜트가르트에서 기억이 아직도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있다. 게다가 난 셀틱 출신이기에 레인저스 경기장에서 골을 넣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오현규는 구단에 벌금도 내야 한다. 득점한 뒤 상의 탈의 세리머니를 펼치며 경고를 받았기 때문. 그는 "감독님이 옐로카드 때문에 벌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나? 난 그 벌금을 낼 거다. 1000유로(약 165만 원)든 2000유로(약 330만 원)든 4000유로(약 660만 원)든 기꺼이 내겠다"라며 웃었다.
토르스텐 핑크 감독은 "정말 파란만장한 경기였다. 또 골을 넣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페널티킥과 퇴장까지 나왔다. 이런 순간에선 종종 실점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난 우리가 이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만족한다. 이번 승리는 우리에게 자신감을 준다. 이번 주말 중요한 더비를 앞두고 힘을 실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승리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