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7번째 월드컵을 앞둔 홍명보(56)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비장한 각오다. 홍 감독은 25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진행한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나의 7번째이자 마지막 월드컵 도전”이라면서 “대표팀 사령탑 제의를 받고 심사숙고 끝에 ‘내 인생은 없고, 오직 한국 축구를 위한다’고 마음 먹었다. 김진규 코치에게 대표팀 코치직을 제안하면서 ‘난 인생을 걸었는데, 넌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축구인생을 걸었나, 인생을 걸었나’라고 재차 묻자 그는 “내 인생이 축구니, 둘 다 똑같은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홍명보는 선수로 네 차례, 코치로 한 차례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감독으로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두 번째 도전장을 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4강 신화를 이끌며 국민 영웅 반열에 오른 그는 감독으로 나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1무2패)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쥐며 고초를 겪었다.
프로축구 울산HD의 K리그1 2연패(2022·2023년)를 이뤄내며 권토중래에 성공한 뒤 지난해 7월 다시금 A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하지만 ‘불공정한 절차로 선임된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을 조 1위 무패(6승4무) 통과로 이끌었던 그는 대중의 눈길은 여전히 싸늘하다.
Q : 북중미 월드컵 개최지 미국에서 열린 최근 평가전에서 미국, 멕시코를 상대로 1승1무를 거뒀다.
A : “두 팀 모두 북중미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팀이자 본선에서 마주할 수 있는 상대들이다. 현지 환경과 경기장 분위기를 미리 체크할 수 있었던 건 중요한 소득이다. 선수들이 두 경기에 임하는 태도가 굉장히 좋아 만족한다. 내년 월드컵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경쟁과 로테이션은 계속될 거다. 물론 부족한 점도 많았다. 특히나 멕시코전에서 앞서다 비긴 건 개인적으로도 아쉽다. 경기 막바지에 어떤 식으로 플레이 형태를 가져갈 지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Q : 현역 시절이던 1994년,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스페인, 독일을 상대로 2골을 넣었다.
A : “미국 월드컵은 내 선수 생활하면서 가장 뜨거운 무대였다. 대회 자체의 무게감이 적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대도 강했다. 섭씨 40도에 육박한 날씨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 불어온 뜨거운 바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 절 성장 시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만약 이번 월드컵에서 무더운 동부 지역에서 유럽 강팀을 상대한다면, 우리는 체력적으로 더욱 잘 준비해야 기회를 만들 수 있다.”
Q : 지난 7월부터 실험한 3-4-2-1 포메이션 기반의 스리백 전형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인데.
A : “우리 선수 구성원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식이다. 월드컵에서는 수비적인 부분들도 중요하다. 플랜 B가 될 수 있고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선수 시절부터 스리백으로 뛰는 걸 좋아해 전술적으로 선수들이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와 전술적 뼈대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다만 그땐 체력적으로 준비돼 압박과 전환 위주로 경기를 풀어갔다면, 지금은 공간을 더 적극적으로 지배해야 하고 빌드업 과정은 더욱 세밀해야 한다.”
Q : 미국 원정에서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공이 빠지는 것을 커버하고 젊은 선수들을 데리고 리딩을 잘해줬다. 만약 김민재와 선수로서 호흡을 맞췄다면 어땠을까.
A : “수비의 중심축 김민재의 개인적인 역량뿐 아니라 팀을 리딩하는 능력도 뛰어난 선수다. 현역 시절 내 플레이 스타일은 현재의 김민재와 달랐다. 덩치 큰 상대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한발 빨리 뛰는 움직임에 주력했다. 그런 측면에서 둘이 함께 뛰면 제법 조화로울 것 같기도 하다. (둘 중 누가 더 최고의 수비수인가?) 시대에 맞는 역할이 있다. 분명한 건 이 시대 대한민국 수비의 핵은 김민재라는 점이다.”
Q : 만약 전성기 선수 시절이라면 손흥민(LAFC)와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을 잘 막았을까.
A : “둘 다 막기 힘든 스타일인데, 손흥민을 막기 좀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수비수 입장에서 공간을 침투하고 파고드는 선수가 막기 힘들다. 결국 오프사이드에 빠지게 만든 방법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Q : 독일계 혼혈선수 옌스 카스트로프(묀헨글라트바흐)를 여론에 밀려 뽑은 거로 오해하는 팬들이 있다.
A : “지난 5월 서울에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옌스의 눈빛에서 진정성을 읽었다. ‘나의 뿌리는 한국’이라는 그의 언급에서 확신을 가졌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도록 영상도 보여주고 역할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아직 22세인 만큼 잘 지켜보려고 한다.”
Q : 혼혈 국가대표 1호 장대일(50)이 대표팀 시절 “가수 엑스재팬에 빠져 노래를 듣고 있는데, (홍)명보 형이 ‘넌 왜 일본 노래를 듣냐’고 했다. 자기는 일본 J리그에서 뛰고 있으면서. 그런데 다음 소집때 CD를 묶음으로 사다 줬다”고 전했다.
A : “(장)대일이는 같은 포지션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앨범을 구하기 힘들어 일본집 근처에서 사다 준 기억이 난다. 선수 때부터 팀이 성공하려면 베스트11보다 뒤에 있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팀이라는 건 한 사람, 두 사람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을 마치고 포상금 차등 지급 얘기가 나오자 균등하게 똑같이 하자고 주장했다.”
Q : 지난달 손흥민의 주장 교체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이 논란이 됐다.
A :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원론적인 입장에서 ‘고민을 해봐야 된다’는 취지로 대답했다. 주장을 바꾼다고 언급하지 않았다. 감독은 주장의 리더십뿐 아니라 선수, 코치, 스태프 등을 끊임없이 점검해야 하는 위치다. 손흥민이 지금까지 팀을 잘 이끌어 왔고 헌신해 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다음 달 평가전을 포함해 앞으로도 손흥민이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 것이다. 다만 ‘손흥민 다음’에 대한 고민도 분명 필요하다. 나도 2002년 월드컵 당시 많은 나이에 주장으로 여러가지 역할을 하다 보니 어려움도 있었다.”
Q :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알아인) 기용 여부가 논란인데.
A : “축구에서 승패는 미세한 차이에서 갈리는 경우가 많다. 박용우의 포지션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지만 중요한 자리다. 물론 실수도 했지만, 아시아 예선 때 황인범(페예노르트)과 무난한 호흡을 보여줬다. 박용우 스스로도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Q : 2002 월드컵 당시 스페인과 8강전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성공한 장면은 애국가 화면에도 들어갔다.
A : “한국인으로서 애국가 화면에 등장하는 건 무한한 영광이다. 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2 월드컵 직후엔 은퇴 이후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이끈 이후엔 (지도자 수업을 위해) 러시아 안지로 떠났다.”
Q : 만약 2002년 월드컵 멤버 중 현재 대표팀에 딱 한 명만 데려올 수 있다면.
A : “현 대표팀에 오른쪽 수비수 설영우(즈베즈다)가 있지만, 송종국을 꼽겠다. 사이드 플레이 뿐만 아니라 내가 못 뛸 때 중앙수비도 잘 봤고, 정말 많이 뛰었다.”
Q : 2014년 브라질월드컵 직후 비난 여론 탓에 화물 엘리베이터를 탔다는 얘기가 있다.
A : “왔다갔다하며 몇 번 탄 건데 와전됐다. 첫 번째 실패라 스스로도 심적으로 힘들었다. 돌이켜보면 대회를 불과 1년 앞두고 팀을 맡아 준비할 시간이 모자랐다.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당시의 경험을 통해 월드컵이 얼마나 정밀한 준비가 필요한 무대인지 깨달았다.”
Q : 지난해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이 있었다.
A :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오직 결과와 태도로 보여주는 것 뿐이다. 팀을 어떻게 더 단단하게 만들지만 생각했다. 선임 과정에 특혜를 입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전력강화위원회 논의 과정이 궁금해 나중에 1차부터 10차까지 회의록을 꼼꼼히 읽어 봤는데, 최종 결론이 1순위였다. 만약 2순위 또는 3순위이면서 순서를 뒤집었다면 내가 자진해서 안 했을 거다.”
Q : 전임 위르겐 클린스만 대표팀 감독 시절이던 2023년 아시안컵 당시 손흥민-이강인의 주먹다짐 사건이 있었다.
A :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대표팀 내부 상황에 대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팀 분위기를 정상화하려면 누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면서 내 이름 또한 거론되기 시작한 걸로 안다.”
Q : 2014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대표팀을 맡았을까. 2024년으로 다시 돌아가면 어땠을까.
A : “2014년으로 돌아간다면 맡지 않았을 것 같다. 축구계 선배가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최종예선을 거쳐야 된다’는 말씀을 해준 적이 있다.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책임감에 맡았지만 최종예선을 거치지 못했다. 반면 작년으로 되돌아간다면 (대표팀을) 맡았을 거다. 최종 예선을 거칠 수 있고, K리그에서도 3년 가까이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Q : 이강인이 지난 6월 “우리의 보스”라며 대표팀 감독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달라고 소신 발언을 했다.
A : “선수들까지 (여론 동향에) 신경 쓰게 해 감독으로서 미안한 마음이다. 축구대표팀 사령탑이라는 자리는 칭찬보다 비판에 익숙한 역할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 역할을 받아들였다. 비판 중에 도움이 부분 것도 있고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
Q : 오현규(24·헹크), 배준호(22·스토크스티) 등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A : “한 두 명에게 의존해 돌아가지 않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커몬 골’(Common Goal·공통의 목표)을 강조한다. 과거엔 무조건 애국심을 앞세우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뜻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게 먼저다. 미국 원정 중에도 스태프까지 모두 참여해 팀 미팅을 진행했다. 지금은 과거 아시안컵 당시의 분위기를 대표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유럽 강호들과 비교해 축구 실력은 모자라더라도, 그들을 넘어설 수 있는 게 결속력과 응집력이다.”
Q :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FIFA 랭킹 23위로 포트2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다. 10월 브라질, 파라과이전은 단순한 친선경기로 생각할 수 만은 없다.
A : “조 추첨에서 포트2에 들어간다면 아마 처음일 거고, 그렇게 만든 건 선수들 덕분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포트2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
Q : 공격수 조규성(미트윌란)이 무릎 수술 후 합병증을 겪은 이후 1년 반 만에 그라운드에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A : “우리 스쿼드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중요한 선수다. (카타르)월드컵에서 좋은 활약한 뒤 유럽에 진출했다. 긴 부상으로 인해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빨리 회복했다는 느낌이 든다. 대표팀에 들어오면 큰 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소집은 하겠지만, 어느 시점일지는 아직 결정하지는 않았다.”
Q : 북중미 월드컵 때 깜짝 발탁도 있을까.
A : “유럽에서 뛰는 어린 선수들을 꾸준히 지켜본다. 예를 들면 박승수(18·잉글랜드 뉴캐슬) 같은 기대주들이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다만 월드컵 때까지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Q : 정몽준 명예회장이 최근 “FIFA랭킹이 한국은 23위, 일본이 17위다, 2002년 월드컵때 우리는 4강까지 갔고, 일본은 16강에 갔다. 우리 축구실력이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하고, 축구인들이 더 분발해주길 바란다”고 쓴소리를 했다.
A : “회장님 시대에는 열악한 상황에서 많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2002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도 불리한 상황을 딛고 일본과의 공동 개최를 이뤄냈다. 요즘 한국 축구가 객관적인 경쟁력에서 일본에 밀리는 건 사실이다. 일본이 한국을 넘어서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했듯, 우리도 새로운 목표를 정해 준비하고 도전해야 한다.”
Q : 한국은 월드컵에서 2차례 원정 16강(2010, 2022년)을 이뤄냈다. 내년 북중미 월드컵의 목표는.
A :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시점이 올 거다. 우리 선수들 중 누구라도 ‘내년 월드컵에 무조건 갈 수 있다’고 자만하지 않길 바란다. 안일하게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밀린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지향하며 내년 월드컵을 준비 중이다. (최초의 원정 8강을 말하는 것인가?) 글쎄. 8강일 수도, 그 이상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