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려온 이란 시민들이 유엔의 제재가 곧 복원될 것이라는 소식에 한숨을 쉬고 있다.
생필품 수급, 리알화 환율 등이 요동치며 생활고가 더 깊어지는 것은 물론 미국·이스라엘과의 군사적 충돌이나 국내 여론 탄압 등 정치·안보 분야의 불안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7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식료품점에서 만난 두 아이의 엄마 시마 타가비는 "매일같이 치즈, 우유, 버터 가격이 오른다"며 "아이들이 너무 어려 과일이나 고기를 장바구니에서 뺄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12살 아들의 아빠인 시나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과 이후 수십년간의 제재를 경험했지만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시나는 "우리는 기억 속에 늘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진다"며 "우리 세대의 꿈이 점점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란 리알화 환율은 연이은 대외 악재 속에 1달러당 100만리알을 넘기며 역대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2015년 이란과 미국 등 서방의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가 타결됐을 때 달러당 3만2천리알 정도였던 것에 비교하면 약 10년 만에 통화가치가 31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한 셈이다.
폭등한 환율은 물가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란 통계청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미국이 자국 핵시설 등을 공습하며 '12일 전쟁'이 벌어졌던 지난 6월의 전년대비 물가상승률은 34.5%로 집계됐다.
특히 핀토콩은 세배로, 버터는 두배로 뛰는 등 주요 식료품값이 50% 넘게 올랐다. 쌀은 80% 이상, 닭 한마리 가격은 26%, 맥주와 양고기 값은 각각 9% 상승했다.
현지 언론은 식량난이 심화하고 전쟁이 또 발발할 것이라는 걱정에 심리 상담을 받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샤히드베헤슈티대학교의 임상심리학자 시마 페드로우시는 "사회가 '12일 전쟁'을 거치며 심리적 압박과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으로 지치고 의욕을 잃었다"고 일간 함샤리 인터뷰에서 진단했다.
페드로우시는 "경제 상황이 이대로 이어지면 사회적, 도덕적으로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며 "사람들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일을 생존 때문에 저지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 당국이 동요하는 국내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처형 등 강압적인 수단을 강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인권단체 이란인권(IHR)은 올해 들어 사형 집행 건수가 이미 1천건을 돌파했다고 집계한 바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압도라흐만 보루만드 이란인권센터는 "이란의 정치·시민적 공간이 완전히 사라졌고, 이란 밖에서는 시민사회 활동가와 반체제 인사들이 초국적 탄압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JCPOA 서명 당사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3개국(E3)이 제재 복원을 위한 '스냅백' 절차를 발동한 데 따라 유엔의 대(對)이란 제재가 이란 시간으로 오는 28일 오전 3시 30분께 복원된다. 여기에는 해외 이란 자산의 동결, 이란에 대한 무기 거래 중단,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개발 제재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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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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