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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야 이포를 내 고향으로 여기다 [왕겅우 회고록(6)]

중앙일보

2025.09.27 14:00 2025.09.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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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나의 작은 세계

수라바야에서 이포까지


나는 네덜란드 치하의 수라바야에서 1930년에 태어났다. 자본주의 세계가 대공황 앞에 무릎을 꿇을 때였다. 군벌로 찢어져 있다가 새 해양세력 일본의 침략 위협에 직면하고 있던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내 이야기는 우리 세 식구가 중국의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다가 결국 영국령 말라야의 이포까지밖에 못 가는 데서 시작한다. 그 후 15년간 몇 차례 시도와 실패가 거듭되었다. 1947년에 난징까지 가기는 했으나 행복한 귀향이 되지 못했다. 부모님은 8개월 만에 포기했다. 그리고 9개월 후, 나 역시 공산군의 입성을 앞둔 난징을 떠나 내가 자라난 곳으로 돌아왔다.

[역주 : 수라바야는 인도네시아 동자바 주의 주도(州都)로 인도네시아에서 자카르타 다음으로 두 번째 큰 도시다. 중국계 인구는 지금 인구 3백만 명의 약 7%로 집계된다.]

중국으로 갈 날을 기다리던 시간과 말라야로 되돌아오는 과정은 내 인생에 당시 생각한 것보다 깊은 굴곡을 남겼다. 노년에 접어든 이제, 그 두 개 장소가 내 삶에 얼마나 큰 작용을 했는지 깨달으며 내 초년의 이야기에 두 개 시각이 엇갈림을 이해한다. 난징의 이미지는 일생을 통해 여러 차례 찾으려 애쓴 대상을 떠올려 주고, 이포는 내가 살아오면서 애정을 키우게 된 다문화세계를 대표한다.

[역주 : 이포는 말레이시아 북부, 태국과 접경한 페락 주의 주도로 70여만 명 인구의 지방도시다.]

긴 세월이 지나고 3개 대륙을 전전한 끝에 이포를 내 고향이라고 여기게 된 것은 얄팍한 감상만이 아니다. 일생의 첫 19년의 대부분을 그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살았다. 상상 속의 고국인 중국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곳에서 자라나는 동안 영국 보호령이던 이 지방에 대한 애정이 저절로 자라나 아직까지 남아있다. 난징도 특별한 연고가 없는 도시였으나 내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곳에서 지낸 시간을 되돌아보며 내 인생의 다른 부분들도 함께 떠올리게 되고, 그곳의 기억과 그 후에 겪은 일들 사이의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한 살 때 부모님이 수라바야를 떠났으므로 그곳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그때의 사진 두 장이 남아있다. 한 사진에는 어린 내가 의자에 앉아 있고 키 큰 자바인 여인이 옆에 서 있다. 나를 먹여주고 씻어주고 말레이어로 말을 걸어준 사람이라고 어머니가 가르쳐주었다. 또 하나 사진에는 아버지 학교 정원사의 품에 내가 안겨 있다. 어느 사진에나 나는 잘 보살핌 받는 모습이어서, 어머니의 외아들로 태어난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하게 된다.

필자와 자바인 유모.
아버지는 그 전해에 그 도시 최초의 중국인학교 교장으로 초빙받았다. 대공황이 자바섬까지 미쳐 제당업이 초토화된 것은 운 나쁜 일이었다. 지역 중국인 사업가들의 후원을 받던 이 사립학교는 즉각 재정난에 빠져들었다. 불안한 상태로 1년을 지낸 뒤에 아버지는 사직했다. 중국으로 돌아갈 여비를 학교에서 낼 수 없었으므로 가까운 다른 곳에 일자리를 찾았다. 말라야였다. 학교 이사 한 분이 싱가포르까지 뱃삯을 내주었다. 중국인학교들을 관리하는 부장학사 자리를 얻어 그곳의 가장 큰 도시 이포로 가게 되었다. 그곳이 아버지 마음에는 중국으로 향하는 길의 중간기착지였다. 말라야가 당신 내외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고 중국은 아들에게 하나의 기다란 그림자에 그칠 것이라는 사실을 그분은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겪은 운명이 당시 수많은 중국인이 공유했던 것임을 나는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역사 연구를 벗어나 아버지 세대가 겪은 변화에 관한 글을 쓰게 되면서 20세기 초반의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 2차대전 후에 그 상황이 얼마나 크게 바뀐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과거 상황을 이해하는 데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길잡이가 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다른 길을 걸은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 장벽이 되기도 했다. 중국을 떠나더라도 남양 아닌 다른 곳으로 간 사람들을 포함해서.

얘기하다 보니 이주 현상이 내 학문적 관심의 주된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부터 밝혀야겠다. 그 주제에 내가 끌린 것은 중국이라는 존재가 외부 사람들에게, 특히 중국을 떠나 다른 곳에 자리 잡은 중국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그 외부 사람들이 중국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또한 궁금한 일이다. 이포와 난징의 기억들로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궁금증들이다.

[Wang Gungwoo, 〈Home is Not Here〉(2018)에서 김기협 뽑아 옮김]



김기협([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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