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사진팀] 25일 폐기흉 증세 악화로 세상을 떠난 개그맨 전유성의 빈소가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향년 76세.발인은 28일 진행되며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뤄진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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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강서정 기자] 코미디언 고(故) 전유성 발인식, 하늘도 울었다.
28일 오전 7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전유성의 발인이 엄수됐다. 장지는 고향 남원시 인월면으로, 고인은 향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뒤 가족과 동료, 제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지막 길에 올랐다.
고 전유성은 지난 25일 밤 별세했다. 향년 76세. 폐기흉으로 시술을 받기도 했던 고인은 최근 증상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고, 위독한 상태가 지속되던 중 끝내 세상을 떠났다.
추도사를 맡은 제자 김신영이 “병원에서 저에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친구’ 즐거웠다. 고맙다고 하셨다. 제자를 넘어 친구로 불러주셨다. 제가 가장 힘들때 한물 두물 세물 가면 보물 된다. 두물이 되라고 하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분"이라고 말하며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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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을 배려하고 웃게해 주신 교수님의 모습 절대 잊지 않겠다”며 “병원에서 자꾸 서울가서 일하라고 하셨는데. 교수님 저에게는 병원에서 있었던 4일이 40년 중에 가장 진실되고 진심이었습니다. 다음생에도 제 교수님으로 나타나주세요”고 고인을 향해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김신영은 MBC FM4U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를 비우고 전북대병원으로 내려가 고인의 임종을 지켰다. 당시 제작진은 단순히 “개인적인 일정”이라고 밝혔으나, 뒤늦게 알려진 진짜 이유는 스승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함이었다.
추도사를 맡은 이홍렬은 “한국 코미디의 큰 별 고 전유성 선배님을 보내드린다. 무대 위 혁신가이자 무대 뒤 스승이셨다. 웃음이 한 사회의 공기이고 문화임을 증명했다”며 “우리는 한 사람을 떠나보내지만 그분이 만든 길 위에 서 있다"며 "남겨주신 웃음과 가르침은 우리의 가슴과 무대 위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개그맨 조세호, 마술사 이은결이 고 전유성 운구를 맡았다. 운구차가 노제가 치러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로 이동하기 전 김신영, 이영자, 팽현숙, 김학래, 이경규 등이 떠나는 고 전유성을 향해 인사했다.
[OSEN=사진팀] 25일 폐기흉 증세 악화로 세상을 떠난 개그맨 전유성의 빈소가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향년 76세.발인은 28일 진행되며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뤄진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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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 전유성 병간호를 하고 추도사를 맡았던 김신영, 그리고 이영자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고, 팽현숙은 주저 앉아 오열했다.
고 전유성은 한국 코미디 발전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1970년대 TBC 인기 쇼 프로그램 '쇼쇼쇼' 대본을 쓰며 작가로서 명성을 쌓았으며, '코미디언'이라는 단어 대신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안해 대중화 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이어 KBS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 당대 최고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활약을 펼쳤으며 '슬로우 개그', '지적인 개그' 등 자신만의 차별화된 유머 코드로 대중에게 웃음을 안겨 왔다.
뿐만아니라 대학로 소극장에서 이뤄지던 개그를 방송화시키면서 '개그콘서트',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같은 개그 프로그램의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이밖에도 아시아 최초의 코미디 페스티벌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명예위원장을 맡아 한국 코미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썼으며, 2007년 경상북도 청도에 국내 최초의 코미디 전용 극장 '철가방 극장'을 설립 하며 후배 양성에 앞장서기도 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