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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한번에 멈춘 '디지털 정부'…백업시스템은 사실상 없었다

중앙일보

2025.09.28 13:00 2025.09.2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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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정부 전산망이 대규모로 마비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28일 정보자원관리원 주변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전자정부 심장’인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이 멈췄다. 화재 한 번에 국가 전산시스템이 마비됐다. 지난 26일 발생한 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로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가 동시에 먹통이 됐다. 화재 발생 이틀이 지난 28일에도 시민 이용이 많은 인터넷우체국, 복지로, 정부24, 나라장터 등은 여전히 복구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 내부 업무용인 온나라 시스템도 정상 작동되지 않고 있다. 당장 한가위를 앞두고 큰 혼란이 우려된다. 행정안전부는 복구까지 최소 2주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3년 전인 2022년 10월 카카오 먹통 사태 당시 정부는 “재해에도 3시간 이내 복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고 밝혔지만 과장된 발언이었음이 이번에 드러났다. 정부의 전산시스템 재해 대비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백업시스템은 사실상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자원 화재로) 국민께서 큰 불편과 불안을 겪고 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불이 난 국정자원은 대전 본원과 광주 센터, 대구 센터로 이뤄져 있다. 대전 본원에서는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 운영에 필요한 정보자원 관리 등을 맡고 있다. 불이 난 곳은 5층 7-1 전산실이다. ‘전자정부의 심장’ 중에서도 핵심부다. 빠르고 안정적인 전자정부 서비스를 위해 행안부ㆍ국토교통부 등 여러 중앙행정기관의 정보자원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다. 대규모 클라우드 시스템이다. 이번 불로 해당 전산실 내 전산 장비 740대와 배터리 384대가 불에 탔다. 데이터 백업 여부에 따라 일부 데이터 손실 가능성도 우려된다.

정부는 647개 시스템 가운데 화재를 피한 551개 시스템은 통신ㆍ보안 인프라 가동이 완료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재가동할 방침이다. 우선 28일 오후 10시 현재 모바일신분증, 우체국 인터넷예금 등 30개가 복구됐다. 불에 탄 96개 시스템은 대구 센터 내 민관 협력형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전할 계획이다.
신재민 기자

이번 화재로 ‘쌍둥이’ 시스템인 전산망 이중화(백업)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게 드러났다. 이중화는 재해복구(DR) 시스템의 핵심이다. 대전 본원과 광주 센터 간에 이 시스템이 일부 구축돼 있으나 데이터 백업 정도의 필요 최소한 수준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백업체계는 어느 정도 갖추고 있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이를 실제로 가동할 시스템은 갖추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난해부터 재난 상황에서 국가 전산자원과 시스템을 보호할 공주 센터가 운영됐어야 했다. 그러나 예산 문제로 건물만 지어 놓고 아직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데이터를 쌓아둘 뿐 정작 운영 시스템에 필요한 기능은 아직 구축되지 않았다.
김주원 기자

정부는 2022년 10월 15일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벌어졌을 때 카카오톡에 다중화 클라우드 서버 구축 등 강도 높은 대비책 마련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강동석 국정자원장은 판교 화재 나흘 뒤 “(국정자원) 재해복구 시스템은 실시간 백업된 자료로 3시간 이내 복구할 수 있도록 구축돼 있다”고 브리핑까지했다. 이후 정부는 2023년 행정망 먹통 사태도 겪었다. 그런데도 초유의 ‘국정자원 본원 먹통 사태’ 상황을 막지 못했다.
28일 화재 현장에서 수거한 리튬이온 배터리가 안정화를 위해 수조에 가득 담겨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안대학원 교수는 “한쪽에 장애가 나면 바로 이어받아 서비스할 수 있는 듀얼센터가 안 만들어져 있었다”며 “(정부 시스템을 보면) 데이터는 이중화돼 있었는데 실제 구동에 필요한 시스템은 이중화가 안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임 교수는 “구글·아마존웹서비스(AWS) 등 민간 기업과 협업해 혁신과 효율성을 꾀하는 미국 정부처럼 우리 정부도 필요한 부분은 민간 기업과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화재의 최초 발화 지점은 무정전ㆍ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다. 공공기관의 배터리 관리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배터리는 2014년 8월 국정자원에 납품됐는데, 사용 연한은 10년으로 이미 1년이 지나서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배터리가 노후화되면 화재 가능성이 커진다”며 “배터리 화재의 상당수가 쇼트(내부 단락)로 발생하는데 쇼트 확률이 올라간다”고 했다.

다만 지난 6월 국정자원 등이 실시한 배터리 정기 점검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 별도로 교체를 권고받은 바는 없다”고 했다.

대전경찰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28일 국정자원에서 소방 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감식에 나섰다. 노후화에 따른 배터리 요인인지, 아니면 배터리 이전 과정에서 작업자의 실수가 있었는지, 배터리 관리시스템 이상 유무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한편 행안부는 이달 30일 납기인 모든 지방세 세목에 대해 신고‧납부기한을 다음달 15일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지방세 시스템은 현재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모바일 납부는 불가능하고 PC 위택스를 통해 신고‧납부해야 한다. 취득세 신고의 경우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 장애로 부동산 거래필증 번호 조회가 안 된다. 이에 따라 신고 관련 제출 서류를 지참해 지자체 세무부서를 직접 방문해 신고해야 한다.



김민욱.김남영.한은화.최종권([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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