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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월드컵까지 정치 이용…공화당 텃밭서만 경기 시사

중앙일보

2025.09.29 01:29 2025.09.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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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 북중미 월드컵을 발판 삼아 자신의 정치적·외교적 입지 강화를 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22일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트로피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내년 6월 개막까지 8개월 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미국 내 개최 도시 변경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월드컵은 무엇보다 안전해야 한다”며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경기 개최 예정지를) 다른 도시로 옮기겠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한 기자가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를 콕 집어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정책에 반발하는 일부 도시에서 월드컵이 열린다고 하자 트럼프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급진 좌파 미치광이들이 운영하는 도시”라고 호응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미국 내 11곳을 포함해 캐나다(2곳), 멕시코(3곳) 등 총 16곳을 월드컵 개최지로 확정한 건 약 3년 전인 2022년 6월이다. 개최지로 확정된 도시들은 경기장 건설과 인프라 확충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했다. 대회 주관과 개최지 선정 권한 역시 FIFA에 있어 트럼프가 멋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개최지 교체 가능성을 꺼낸 건 민주당 우세 도시들을 겨냥해 파상 공세를 펼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미국 내 개최지 11곳 중 9곳의 시장이 민주당 소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7월 13일 미국 뉴저지 이스트 러더퍼드의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첼시가 파리 생제르맹을 꺾은 후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 옆에서 황금 글러브 트로피를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가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막역한 사이인 만큼 실제로 개최지가 변경될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말도 나온다. FIFA는 오는 12월 5일 열릴 월드컵 조추첨 장소도 트럼프 요청으로 당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워싱턴DC의 케네디 센터로 옮겼다. 지난 2018년 6월 북중미 월드컵 공동개최권을 확보했을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럼프는 올해 3월 인판티노 회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월드컵태스크포스(TF)를 발족시키고 자신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등 내년 월드컵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삼으려는 기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연방 정부가 월드컵 안전을 위해 편성한 6억 2500만달러(약8700억원) 예산도 각 도시 별로 균등하게 집행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예산 집행은 백악관 월드컵TF가 재량권을 갖고 있다.

지난 7월 13일 첼시의 리스 제임스와 팀원들이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내 뿐만 아니라 미국에 입국하려는 월드컵 관광객들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다. 미국한테서 50%의 상호관세 폭탄을 맞은 축구강국 브라질이 대표적이다.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달 유엔총회에서 브라질 보건장관은 유엔본부 인근 이동만 허용됐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28일 “월드컵 기간 동안 (트럼프가) 미국 입국 통제를 가장 손쉬운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며 “일부 브라질 저명 인사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국 관중이나 정부 관계자의 비자 발급을 제한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당국은 뉴욕에서 친팔레스타인 행사에 참석한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의 비자도 취소했다. 브라질과 콜롬비아 모두 현재까지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48개국 중 18개국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본선 진출이 확정된 이란도 관광 목적은 입국이 거부된다. 지난 6월부터 시행된 이란 등 12개국 국민 전면 미국 입국 금지 조치에 따르면 선수·코치·대회 필수 인원에만 예외가 적용된다. 폴리티코는 “과거 월드컵 개최국들이 입장권 소지자에게 자유로운 출입국을 허용한 것과는 다른 전례”라고 분석했다.

반면 트럼프가 자신과 관계가 원만한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월드컵 예선전 출전을 지지하고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 종전과 가자전쟁 종식 같은 외교적 성과 도출에 활용할 것이란 관측 역시 나온다. 트럼프는 지난 5월 백악관 월드컵TF 첫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유인책의 하나로 러시아의 월드컵 출전 허용을 언급했었다. 현재 FIFA와 유럽축구연맹(UEFA)이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의 침공 이후 러시아 국가 대표팀과 모든 러시아 클럽팀의 국제 대회 출전을 무기한 정지해 러시아는 월드컵 예선전에 출전할 수 없는 상태다.

UEFA는 다음주 러시아에 이어 이스라엘도 유럽 축구무대에서 퇴출시키는 방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UEFA가 이스라엘 출전을 저지하면 FIFA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 다만 트럼프가 찬성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폴리티코는 “인판티노 회장은 월드컵 경기의 75%가 치러지는 미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트럼프의 마음을 만족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전했다.






위문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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