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임지혜씨는 러닝과 재봉이 취미다. 고가의 러닝 운동화나 재봉에 쓸 좋은 원단과 부자재를 사는 데 기꺼이 지갑을 연다. 대신 고가의 화장품이나 명품은 사지 않는다. 임씨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내 만족감을 크게 할 수 있는 소비를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와 불확실한 미래에 20·30세대의 소비가 달라졌다. 백화점 쇼핑이나 자동차 같은 ‘큰 지출’은 줄이는 대신 경험·여가·건강 같은 자기 관리형 소비를 늘리고 있다.
29일 NH농협은행이 은행·카드·마트 빅데이터를 토대로 제시한 소비·금융 트렌드다.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NH농협은행 2600만 명, NH농협카드 2040만 명, NH멤버스 1100만 명 고객(중복 제외)의 결제 내역을 20·30대 소비 성향을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다.
최근 1년 사이 전 연령대의 카드 소비 건수는 1%, 이용 금액은 2.2% 늘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2.3%)에 못 미친다. 물가 상승 효과를 걷어낸 실제 씀씀이는 줄었다는 의미다. 대신 품목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NH농협은행 데이터사업부 우창섭 센터장은 “경기 불황기에 전체적인 씀씀이를 줄이는 대신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선택하는, 이른바 ‘트리토노믹스’ 현상이 20대와 30대를 중심으로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트리토노믹스’는 ‘선물·대접(Treat)’과 ‘경제(Economics)’를 뜻하는 영어를 합쳐 만든 말이다.
1년 사이 20대와 30대는 백화점(-4%), 일반 주점(-25%), 골프장(-10%), 자동차(-6%) 등 소위 사치성 고액 소비를 줄였다. 40·50대와 60대 이상에서도 이런 지출이 감소하긴 했지만, 하락 폭이 20·30세대 만큼은 아니었다.
대신 20·30대는 취미 활동과 자기 계발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 세대에서 스포츠 경기장(65%), 콘서트·뮤지컬(11%) 등 티켓 구매가 늘었다. 스키장(115%)·수영장(24%) 등 관련 여가 시설 이용도 증가했다. 건강에도 관심이 컸다. 20대와 30대는 단백질 음료(53%)와 저당·제로 음료(22%) 소비를 크게 늘렸다.
먹거리 소비도 마찬가지다. 20~30대 사이 뚜레쥬르·파리바게트 등 프랜차이즈 빵집 소비는 12% 줄었다. 대신 입소문으로 찾아가는 개별 빵집 결제는 29% 늘었다. 대전의 유명 빵집인 성심당 결제가 9% 증가한 게 대표적이다. 직장인 이예원(37)씨는 “주말엔 여유와 감성을 느끼려고 맛있다고 소문난 베이커리를 일부러 찾아가는데, 그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수제버거 브랜드 소비는 8% 늘어난 반면, 맥도날드·롯데리아 같은 프랜차이즈 버거 결제는 5% 줄었다.
영국 가디언은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 출생)는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19달러짜리 스무디처럼 사랑스러운 작은 것들로 스스로에게 보상한다”며 “불황형 소비인 ‘립스틱 효과’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20·30대의 완구점 지출이 1년 사이 224% 급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캐릭터 인형인 ‘라부부’ 키링 등이 대표적이다.
컨설팅업체 KPMG는 이를 두고 “경기 불황에 한정된 제품에만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소비 양상의 세분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강태영 NH농협은행장은 “최신 금융과 소비 트렌드를 신속하게 포착하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