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지경입니다. 눈물만 나네요. 1000개나 되는 한과 세트를 다 버리게 생겼습니다.”
충북에서 한과 업체를 운영하는 이모(57)씨는 망연자실해했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우체국쇼핑몰이 며칠째 먹통이 되면서다. 지난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의 여파다.
이씨의 한과 업체는 20년 가까이 명절 선물세트 대부분을 우체국쇼핑몰에서 판매해 왔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한과 상자 1000개, 즉 수만 개의 한과를 폐기해야 할 상황이다. 이씨는 중앙일보에 “예년 판매량을 고려해 주문 접수 즉시 발송하려고 밤을 새워 한과 1000세트를 만들어 뒀었다”며 “쌓여 있는 한과들을 보면 천불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3000만원어치 재료와 1200만원어치 한지 상자를 외상 구매해 추석을 준비해 왔다. 이씨는 “물품 대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설·추석 명절 장사로 1년 먹고사는데 내년 설까지 어떻게 버텨야 하나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우체국쇼핑몰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29일 우편 서비스는 일부 재개됐지만, 우체국쇼핑몰은 26일 이후 4일째 접속조차 안 된다. 이날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쇼핑몰은 언제 복구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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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택배 조회 중단
…어디 있는지 언제 도착하는지 몰라
현재 우체국쇼핑몰에 입점한 업체는 1만5000여 곳으로, 지역 특산물이나 제철 식품 등 명절에 수요가 급증하는 먹거리 판매자가 대부분이다.
우체국쇼핑몰에 입점한 충남의 김 제조·판매 업체도 비상이 걸렸다. 이 업체 관계자는 “화재 발생 직전에 1000건 넘는 주문이 들어왔었는데, 쇼핑몰 접속을 하지 못하니 주문자 연락처나 주소를 알 길이 없어 다른 택배로 발송할 수도 없다”며 “놓친 주문을 합치면 억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상주시의 한 곶감 생산자는 “우체국쇼핑몰이 주요 판로인데 추석 대목에 주문을 하나도 못 받고 있다”며 “올 추석 장사는 날린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 입점업체 주인은 “입점 수수료는 물론이고, 우체국 추석 안내 책자에 들어갈 광고 비용으로만 270만원을 냈는데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향후 입점업체들이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우체국택배와 계약한 온라인쇼핑 판매자들도 애먹고 있다. 이날부터 우체국 방문 접수 시 택배 발송이 가능해졌지만, 배송조회 서비스가 모두 중단됐고 송장도 모두 수기로 작성해야 한다. 또 신선식품을 비롯해 착불·안심 소포, 미국행 국제특급(EMS) 비서류 우편물 접수는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29일 오전 9시 대전시 서구 둔산동의 한 우체국. 50대 초반의 여성이 택배 창구에서 언성을 높이고 직원에게 항의했다. 외국으로 보내려는 택배 접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시스템이) 정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다. 조금만 기다리면 바로 처리된다”는 직원의 설명에도 여성의 목소리는 가라앉지 않았다. 바로 옆 택배 무인접수기에는 ‘시스템 오류 접수 불가’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지난주 금요일(26일)까지만 해도 무인접수기를 통해 보낼 수 있었던 택배는 우체국 직원의 손을 거쳐야만 접수가 가능했다. 다행히 전날까지 먹통이었던 현금자동지급기(ATM)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우체국에선 서버 교체로 인해 이미 발송된 우편물의 배송 상황을 확인할 수 없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소포를 정리하던 한 집배원은 “신선식품 접수가 줄어든 것 같다”면서도 “보통 주말 직후인 월요일보다 화요일 우편물이 더 많아, 내일부터 혼선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온라인 판매자들의 커뮤니티에는 “며칠 전에 발송한 우체국택배를 추적할 수 없어 고객에게 수신 여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할 판” “우체국 수기 송장을 100장도 넘게 썼더니 팔이 떨어질 것 같다” 등의 경험담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