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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사이트] 재편되는 반도체 질서, 한국은 어디로?

Los Angeles

2025.09.2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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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USC 컴퓨터 과학자

김선호 USC 컴퓨터 과학자

글로벌 반도체 산업이 전례 없는 변화를 겪고 있다. 그 중심에는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와 미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 인텔의 전략적 협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 협력은 단순한 사업적 제휴를 넘어, 미국이 국가 전략 차원에서 자국중심정책의 완성과 글로벌 기술 패권을 확보하려는 중대한 시도로 평가받는다. 동시에 이는 한국의 미래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이 자유무역 기조에서 벗어나 보호무역과 자국 중심 정책으로 전환한 이유는 명확하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자국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고, 전략 산업의 자립성을 확보하려는 경제·정치적 필요 때문이다. 여기에 미·중 기술 경쟁, 팬데믹, 국내 정치 여론 등의 요소가 더해지며 그 전환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자유무역을 오랫동안 주도해온 미국이 이를 일부 포기하거나 유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지 정치적 의도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에너지와 식량의 자급, 첨단 기술력, 거대한 내수시장, 금융 및 군사력 등으로 외부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구조적 강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다른 나라들이 쉽게 갖추기 어려운 미국만의 독보적인 기반이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반도체는 단순한 산업을 넘어, 국가 전략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사실상 이 두 분야는 미국이 자유무역 기조를 유보하고서라도 반드시 지켜내려는 기술 패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반도체를 단순한 산업 제품이 아니라 국가 안보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는 군사, 통신,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등 미래 핵심 산업의 기반이며, 첨단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핵심 무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은 그동안 반도체 생산의 상당 부분을 아시아, 특히 대만과 한국에 의존해 왔고, 이는 공급망의 취약성으로 이어졌다. 팬데믹을 거치며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반도체 주권’ 확보는 미국의 국가 전략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TSMC와 인텔의 협력은 전략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TSMC가 미국 내에 첨단 공장을 설립하고, 인텔과 제조 기술 및 설계 역량을 결합하는 것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다.  
 
이는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기반을 강화하려는, 이른바 ‘산업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미국은 첨단 제조업 경쟁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미래 기술 패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내 높은 생산 비용, 인프라 구축, 숙련 인력 부족, 대만과 중국 사이의 지정학적 긴장 등 다양한 현실적 제약과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러한 글로벌 판도 변화 속에서 한국의 역할과 전략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TSMC와 함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으며, 첨단 기술 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TSMC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다. 특히 삼성은 미국의 반도체 산업 부흥 정책에 발맞춰, 미국 내 공장 설립과 생산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단순한 경쟁자를 넘어, 미국-대만-한국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은 미국의 기술 패권 전략과 중국 견제 구도 속에서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며, 삼성은 TSMC 외에 미국이 실질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글로벌 반도체 제조 파트너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삼성에 전략적으로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비협력적이고 일방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마치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듯한 이 모순적 태도는, 기술 패권을 둘러싼 구조적 긴장에서 비롯된다는 시각이 많다. 즉, 미국은 삼성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만, 삼성의 완전한 독립성은 원하지 않기 때문에 통제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반대로, 삼성과 한국이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기술 주권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자율성을 지키려는 노력과 충돌하게 만든다. 그 결과, 두 국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과 삼성전자는 이 격변의 시기 속에서 첨단 기술력과 글로벌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국가 전략과 국제 경쟁 양 측면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각국의 경제·안보·기술 패권을 좌우하는 국가 경쟁력의 바로미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반도체 경쟁은 단기적인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 전략과 글로벌 산업 생태계 속에서의 협력과 경쟁을 모두 포함하는 복합 게임이 될 것이다.  
 
미국, 대만, 한국이 이 판을 어떻게 짜고 움직이느냐가 21세기 기술 패권의 향방은 물론, 각국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김선호 / USC 컴퓨터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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