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일 인공지능(AI) 산업에 한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실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AI 투자) 규모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재원을 조달할 때 독점의 폐해가 없다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접견 결과를 브리핑하며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소개했다. 삼성·SK 등 국내 관련 기업이 반도체 공장 등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 유치가 필요한 시점인 만큼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김 실장은 전했다.
금산분리는 1982년 도입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다. 재벌 기업이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하거나 불공정 거래를 하는 데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만들어졌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의결권은 4% 이내로 엄격히 제한했다.
하지만 현재 산업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정보기술(IT) 발달로 금융과 비금융의 업무 영역 구분이 사라진 이른바 ‘빅블러’ 시대다. 국내에선 네이버ㆍ카카오 등이 금융 영역에 진출했고, 해외에선 애플 등 빅테크 기업은 전통 금융업을 위협하고 있다. 기업들이 AI 등 첨단산업에 대규모 민간자본이 투입되기 위해선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온 배경이다.
이 대통령의 ‘금산분리 규제 완화’ 발언은 이 규제로 인해 신산업 분야에서도 투자 장벽이 생기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적어도 국정과제인 AI 산업 분야 투자에 대해서는 완화를 시사한 것이다.
실제 한국 기업들은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자체 금융 계열사를 통한 자금 조달이 힘들다. 이 때문에 외부 투자나 내부 유보금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했다. 전략적으로 대규모 투자와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제약이 생기는 구조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일본ㆍ유럽연합(EU)은 금산분리 규제가 없고, 미국은 은행 소유만 금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모든 금융업을 금지하는 광범위한 금산분리 규제를 적용한다.
150조원 국민성장펀드를 키우는 방법으로 금산분리 완화가 힘이 되는 측면도 있다. 최근 기업들은 단순한 자금 투자가 아니라,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금산분리 규제에 막혀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일반 지주회사의 CVC 관련 금산분리가 풀리면 위탁운용사(GP)를 맡을 수 있어 대규모 자금 집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이 대통령이 참석한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선 금융회사 대표들과 기업인들도 비슷한 제안을 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금산분리 때문에 대기업이 후배 양성 투자를 자유롭게 하기 어렵다. 안전장치 마련을 전제로 포지티브 방식 허용을 검토해달라”며 “이렇게 되면 민간 펀드를 1조 원까지 키울 수 있다. 민ㆍ관ㆍ금융이 함께 들어오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다만 김 실장은 “금산분리 완화는 논쟁적 사안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간 민주당이 금산분리 완화를 반대했던 만큼 당정간 논의도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각 나라의 전략산업에 있어서는 새로운 시대환경에 맞춰 (규제를)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와 AI 등 첨단 산업에 대해 “글로벌리(전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정책이 우리 통념과는 다르게 경계를 넘어서 산업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도 새로운 시대 환경에 맞춰서 재검토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AI·빅데이터·로봇·바이오·반도체 등 신기술을 키우려면 대규모 마중물이 필요하다”며 “자금이 풍부한 금융사가 대규모로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금산분리가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회사의 건전성 악화 문제를 주의해야 한다"며 "은행을 예로 들면 국민 예금을 기반으로 하는 자산을 투자에 활용하는 셈이어서 위험성 높은 투자의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