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이재명 정부의 배드뱅크 ‘새도약기금’이 닻을 올렸다. 이달부터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연체채권을 매입하면서다. 연말부터는 빚 갚을 능력이 없는 개인 채무를 순차적으로 소각한다. 취지는 좋지만,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뤄지는 이런 신용사면이 ‘도덕적 해이’와 성실상환자와의 ‘형평성 논란’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이날 신용회복위원회 본사에서 ‘새도약기금’ 출범식을 열었다. 재정 4000억원과 금융사 출연금 약 4400억원을 합친 8400억원으로 운영된다. 연체채권 매입 규모는 약 16조4000억원, 수혜 대상은 113만4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달부터 1년간 은행과 보험·신용카드사 등 협약을 맺은 금융사의 연체채권을 차례대로 매입한다. 매입이 시작되면 채무자는 ‘추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채권 소각(탕감)은 연말부터 이뤄진다.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은 ‘개인 파산’에 준하는 소득(재산)을 보유한 경우에 상환능력 상실자로 판단해 빚을 탕감하기로 했다. 소득 기준은 중위 소득 60% 이하(1인 가구 월 소득 154만원 이하)이며 재산은 생계형에 한정했다. 생계형 재산에는 2000만원 이하의 농지·양어장·염전 등 토지와 임대차보호법상 최우선 변제금액 이하의 주택, 10년 이상 차량 또는 1t 이하 소형 화물차, 금융자산 185만원 이하 등이 포함된다. 다만 기초생활수급자를 비롯해 장애인연금수령자, 생계지원금수급자 등은 심사를 거치지 않고 빚(5000만원 이하)을 탕감한다.
심사 결과 중위소득 60% 초과 또는 회수할 자산은 있지만, 빚 갚을 능력이 낮은 경우엔 신용회복위원회와 채무조정에 들어간다. 이때는 30~80% 원금 감면과 최장 10년의 분할상환, 이자 전액 감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충분히 빚을 갚을 능력(중위소득 125% 초과 등)이 있을 때는 추심과 상환 절차가 재개된다.
새도약기금이 연체 채권을 한꺼번에 매입하기 때문에, 연체자가 별도로 신청할 필요는 없다. 금융사가 기금에 채권을 팔 때(넘길 때), 이후 새도약기금이 상환능력 심사를 완료할 때 각각 채무자에게 통지할 계획이다.
형평성 논란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도 추가됐다. 7년 미만 연체 채무자에 대한 추가 지원책을 내놓으면서다. 연체 기간이 5년을 넘었으나 7년 미만인 경우엔 최대 80% 원금 감면 등을 지원하는 특별 채무조정 대상에 포함된다. 이미 채무조정을 신청해 일부 빚을 갚은 경우엔 총 5000억원 규모의 특례대출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상당수 전문가는 ‘빚 탕감’에 따른 도덕적 해이 논란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봤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빚 탕감 정책은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꾸준히 빚을 갚아 온 성실 채무자에겐 역차별이 된다. 또 ‘소액 빚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채무자가 생길 수 있다”며 “취약계층이나 소상공인의 재기는 일자리 등 사회복지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빚 탕감 재원의 절반 이상을 금융사로부터 조달하겠다는 방침에 금융권에서는 “민간 부담이 과도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당초 4000억원에서 4400억원으로 늘었다. KB·신한·하나·우리·NH 등 금융지주사를 포함한 주요 금융회사들은 이미 서민·소상공인 지원에 수조원을 투입한 상황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상환능력을 상실한 분의 재기 지원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회복하고 우리 사회의 신뢰와 공동체 연대를 강화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