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가장 역동적인 관광 콘텐트는 이른바 ‘굿즈’ ‘뮷즈(뮤지엄+굿즈)’로 통하는 관광기념품이다. 지역 고유 상품부터 박물관 뮷즈까지, 기념품이 관광 콘텐트로 폭넓게 소비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와 까치호랑이 배지, 경주박물관의 얼굴무늬 수막새 굿즈, 리움미술관의 겸재 정선 큐브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왕실 와인 마개, 갓잔, 석굴암 조명, 화협옹주 연지고, 궁궐 사계 글리팅, 백제 진묘수 디퓨저….
연일 품절 사태를 빚는 인기 기념품이자, ‘2025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수상한 영광의 얼굴이다. 올해 관광기념품 공모전의 주요 수상작을 통해 K굿즈 트렌드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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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기념품 공모전…굿즈 27년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지난해 뮷즈 판매만으로 213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8월까지 이미 217억원어치를 팔았다. 이미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뮷즈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은 단연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를 비롯해 K컬처의 인기에 힘입어 날마다 오픈런이 이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뮷즈의 성지라면, 한국관광공사의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은 K관광기념품의 등용문이다. 1998년부터 27년간 한국 대표 관광기념품 2000여 점을 발굴했다.
갓 소품 유행 속에 품절 대란을 낳은 ‘흑립 갓끈 볼펜(2023년 문체부 장관상)’, 5억원 누적 매출을 달성한 ‘자개소반 무선 충전기(2021년 한국관광공사 사장상)’, 폭발적인 인기에 중국산 모조품까지 등장한 ‘단청 키캡 키보드(2024년 한국관광공사 사장상)’ 등등 성공 신화가 이어지고 있다.
기념품 시장의 트렌드도 달라졌다. 한국관광공사 쇼핑숙박팀 유한순 팀장은 “과거에는 거울·자석·볼펜처럼 간단하고 저렴한 소품이나 전통 공예품이 주를 이뤘으나 요즘은 비싸더라도 소장 욕구를 자극해야 팔린다”고 말했다. 가치와 경험, 희소성을 높이 사는 프리미엄 소비 트렌드가 올해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도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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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도 프리미엄하게
올해 공모전 은상 수상작 ‘경주 석굴암 조명(11만6000원)’을 보자. 석굴암 본존불과 원형 주실을 110분의 1로 축소 재현한 조명인데, 은은한 조명이 본존불을 후광처럼 비추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8월 국립박물관 온라인샵 ‘뮷즈(MUDS)’에서 판매된 이후 연일 품절 사태를 일으키고 있다. MZ세대 사이에선 '명상등' '무드등'으로 입소문이 났다.
제작사의 양영모(40) 대표는 “석굴암 전체를 정교하게 재현한 것이 특징”이라며 “제품 하나 제작에 30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3D 프린터 10대로 시작해 현재 100대까지 장비를 늘렸지만, 물량이 달릴 만큼 수요가 많단다.
대상(대통령상)에 오른 ‘조선왕실 와인 마개(3만2000원)’도 주방용품이라고 하기엔 예술성과 완성도가 빼어나다. 와인 마개 위에 곤룡포 문양의 금속 공예를 올린 게 특징이다.
일명 ‘어좌 패키지’도 감탄을 부른다. 보관함을 열면 일월오봉도 병풍이 펼쳐지고, 용상 형태 받침 위에 와인 마개가 놓인다. 경복궁 근정전을 손바닥 위에 옮겨 놓은 듯한 연출이다. 지난해 9월 포장을 바꾼 뒤로 매출이 5배나 뛰었단다. 제작사 한상미(32) 대표는 “음주 문화가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대량 주문이 들어온다”고 귀띔했다.
1개에 10만원이 넘는 K뷰티 제품도 있다. 프리미엄상을 받은 ‘화협옹주 연지고(11만8000원·프리미엄상)’로, 화협옹주(영조의 일곱째 딸) 묘에서 출토한 화장품 성분(홍화·밀랍)을 활용해 제작한 립밤이다. 청화 백자를 용기로 사용해 가격이 높지만, 40~50대 여성의 구매가 꾸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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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일상으로
생활 밀착형 굿즈, 재미 요소를 결합한 체험형 굿즈도 크게 늘었다. 조선 선비의 갓을 모티브로 한 ‘조선의 멋, 갓잔(4만2000원·특별상)’은 생활용품 가운데 요즘 가장 핫한 기념품이다. 잔과 받침 가장자리에 순금 안료를 둘러 잔을 뒤집으면 근사한 ‘갓’ 모양이 된다.
제작사 양학모(41) 대표는 “10년 전엔 펜·마그넷 같은 저가형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아이디어와 실용성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케데헌’에 갓이 등장한 뒤로 수요가 크게 늘어 국립중앙박물관·인천공항 매장 등에서 품절을 이어가고 있다. 양 대표는 “공항 매장은 외국인 구매율이 더 높다”고 말했다.
동상을 받은 ‘AGAIN 1500-진묘수(3만원)’는 무령왕릉의 백제 유물 ‘진묘수(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조각상)’를 형상화한 디퓨저다. 방을 지키는 수호신 콘셉트 덕에 자취생 선물로 유행을 타고 있다. 지난 7월 출시해 2개월 만에 2000만원의 매출 올렸단다.
금속 포일(박지)을 활용한 공예 체험 키트 ‘한국 전통 글리팅(1만8700원·금상)’도 있다. 어린이용 포일 아트와 달리 단풍·기와·창호 같은 디테일을 살린 정교함이 특징이다. 한 점을 완성하는 데 평균 2시간 이상 정성이 든다. 2022년 10월 크라우드 펀딩으로 5000만원을 모았고, 현재 전국 미술관·병원·학교에서 체험용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오는 11월 21~23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2025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박람회(11월 21~23일)’에서 올해 수상작 25점을 포함해 역대 주요 수상작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