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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할 수 있다" 7명의 '男인어들' 극강의 칼군무 꿈꾼다 [스튜디오486]

중앙일보

2025.10.03 15:27 2025.10.0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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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486]은 중앙일보 사진부 기자들이 발로 뛰어 만든 포토스토리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중앙일보는 상암산로 48-6에 있습니다. "
 세인트폴 남성 아티스틱스위밍 팀(Saint Paul Male Artistic Swimming Team) 선수들이 촬영을 위해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구 서리풀어린이 수영장에 모였다. 왼쪽부터 송율·허신영·노시우·구대훈·이시훈·이하준·신태연 선수.
2024 파리 올림픽. 아티스틱스위밍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지 40년 만에 남자 선수의 출전이 허용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8명이 출전하는 단체전에 국가별로 남자 선수 2명의 출전을 허용했다. 하지만 출전 10개국 모두 남자 선수가 단체전에 참가하는 모험을 선택하지 않았다. 결국 아티스틱스위밍 사상 첫 남자 올림피언은 그 해에 탄생하지 못했다. 올림픽에는 단체전과 여자 듀엣 경기, 두 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다.

SMAT 선수들이 영화 '어벤져스' 음악에 맞춰 수중 연기를 펼치고 있다. 선수들 간의 동기화 된 움직임은 아티스틱스위밍 연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국내 남자 아티스틱스위밍 선수들의 현실도 녹록지 않다. 대중의 인지도가 낮은 비인기 종목에 머물고 있다. 대한수영연맹이 주최하는 전국 대회에 남자 솔로와 혼성 듀엣 등의 남자 경기가 있지만, 정식종목이 아닌 시범경기로만 열려 제대로 실력을 겨뤄볼 무대도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운 환경을 딛고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남자 선수들이 있다. 세인트폴 남성 아티스틱스위밍 팀(Saint Paul Male Artistic Swimming Team· 이하 SMAT)이다.

SMAT 선수들이 입수 전 스타팅 포즈인 데크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아티스틱스위밍 경기에서는 경기 시작 후 10초 이내에 각 팀컬러에 맞는 도입 동작을 취하고 본격적인 연기를 펼친다.
SMAT는 현재 7명의 중·고등학생 선수로 구성되어 있다. 허신영, 구대훈, 송율, 신태연, 이시훈, 이하준, 노시우. 당연히 모두 남학생이다. 지도는 벨기에 아티스틱스위밍 국가대표 출신인 엘랸(Elien) 코치가 맡고 있다. 엘랸 코치는 선수들의 소속 클럽 딥블루밍의 김희진 감독과 함께 국내 최초로 남자 선수만을 대상으로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선수들은 수심 5m의 풀이 있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제 1수영장에 모여 체력 훈련과 루틴 연습을 소화하며, 아티스틱스위밍에 필요한 체력·예술성·음악 해석력을 고르게 훈련한다. 남자 선수들이라 유연성 훈련도 필수다. 특히 팀 전체가 한 몸같이 움직이는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물속은 물론 물 밖에서도 호흡을 맞춘다.

교복을 입고 잠실종합경기장 제1수영장에 모인 SMAT 선수들이 입장에 앞서 동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엘랸 코치(오른쪽)의 지도와 함께 SMAT 선수들이 몸 풀기 겸 러닝 훈련을 하고 있다.
SMAT 선수들이 소속된 클럽 팀 딥블루밍의 김희진 감독(왼쪽)이 송율 선수와 함께 유연성 훈련을 하고 있다. 여성에 비해 유연성이 부족한 남자 선수들에게는 훈련이 필수적이다.
SMAT 선수들과 아티스틱스위밍 국가대표 이채은 선수와 함께 발끝을 쭉 펴서 발등을 둥글게 만드는 포인 동작과 함께 수면 위에서 그릴 원형 패턴을 만들고 있다. 포인 동작은 발레의 기본 동작이기도 하다.
이하준, 이시훈 선수(왼쪽부터)가 음악에 분위기에 맞춘 연기 훈련을 하고 있다. 아티스틱 스위밍 경기에서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선수들의 표현력도 중요하다.
물 위로 솟구치는 플라이어 역할을 맡은 이시훈 선수는 “물속에서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우리 팀의 호흡은 다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하다"며, "다 같이 함께 호흡을 맞춰 한 명을 물 위로 높이 치솟게 올리는 리프트 동작은 우리 팀워크의 결정체”라고 말했다.
플라이어 역활을 맡은 이시훈 선수가 수면을 박차고 오르면서 리프트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높게 도약한 구대훈 선수가 리프트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이시훈 선수가 신태연 선수의 도움을 받아 부스트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체계적인 훈련으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주목할 만한 성과도 이뤄냈다. SMAT는 2025년 제3회 김천 전국 마스터즈 수영대회에 참가해 팀 금메달, 듀엣 금메달, 솔로 금·은메달을 차지했다. 신태연 선수는 "경기를 마치고 관중들이 보낸 큰 환호에 남자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며, "단순히 기술을 보여주는 것에서 나아가 관중의 반응을 끌어내는 표현과 창의적인 동작을 더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3회 김천 전국 마스터즈 수영대회’ 아티스틱스위밍 부문에 참가해 단체전에서 우승한 SMAT팀 선수들이 메달을 들고 있다. 사진 SMAT
김천 전국 마스터즈 수영대회에 참가한 SMAT 선수들이 음악 시작과 함께 데크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SMAT

지금의 SMAT의 탄생에는 아티스틱스위밍 국가대표 이채은 선수의 역할이 컸다. 오랜 기간 혼자 훈련을 이어온 이 선수는 국제적으로 파워풀한 남자 선수들의 동작에 여자 선수들의 예술성과 더해져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주목했고, 국내 아티스틱스위밍 남자 선수도 충분히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함께 훈련하며 시너지를 얻고 싶다는 생각에 접근성이 용이한 학교 내에 동아리를 만들어 남자 선수들을 모집했다. 처음에는 종목 자체가 생소하고 훈련 강도가 높아서 망설이는 학생이 많았지만, 조금씩 늘어나 지금의 SMAT가 만들어졌다.
SMAT 선수들을 위해 훈련에 함께 참여한 이채은 선수가 동작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 선수는 "남자 선수들도 충분히 예술성과 힘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며, "그 다양성이 아티스틱스위밍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열린 아티스틱스위밍 국가대표 선발대회에서 이 선수는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송율 선수는 아티스틱스위밍의 매력에 대해 “수영과 체조, 무용,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종합 예술 스포츠’"라며, "거위처럼 물속에서는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지만, 표정과 동작으로는 우아함을 연기하는 두 가지 긴장감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SMAT 선수들이 물속에서 거꾸로 선 채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대회의 수심은 3m 이상이며, 경기장은 물속의 동작을 볼 수 있도록 깨끗해야 한다.
물속에서 연기를 준비하는 SMAT 선수들. 아티스틱스위밍 경기에서는 선수의 신체가 수영장 바닥에 닿으면 감점된다. 선수들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팔과 손으로 물을 밀어내는 스컬이나 양 다리를 회전시키는 에그비터 킥 등의 스킬을 사용한다.

현재 SMAT는 12월에 열리는 코리아마스터즈 대회를 목표로 막바지 담금질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된 훈련을 묵묵히 이어갈 수 있는 이유에 대해 허신영 선수는 "아무리 강도가 높은 훈련이라 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강한 의지가 저를 지금의 선수로 만들었다"며, "물속에서 힘이 빠져가는 순간에도 해내고 말겠다는 목표를 놓치지 않으면 결국 할 수 있다”고 말했다.
SMAT 선수들이 호흡을 유지하며 동작 훈련을 하고 있다. 벨기에 국대 출신인 엘랸 코치는 "숨을 참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밝혔다. "불규칙한 숨 참기 속에 고난도 동작을 이어가면 선수들은 폐가 타 들어 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SMAT 팀의 철학이다. 이들은 개척자 정신을 모토로 힘든 순간들을 함께 이겨내며 더욱 단단한 팀워크를 다지고 있다. 구대훈 선수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여준 무대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기에 가능했다"며, "앞으로도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남자 아티스틱스위밍의 새로운 장을 우리가 직접 써 내려 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 몸으로 움직이며 서로의 움직임을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수영 실력도 중요하다.
SMAT 선수들이 수면 위에서 패턴을 만들고 있다. 이 때 선수들은 최대한 수면에 파문이 일지 않도록 손, 발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조절한다.
SMAT 선수들이 다리를 수면 밖으로 뻗어올리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팀 연기에서 선수들이 마지막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음악의 분위기에 맞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연출은 중요하다.
아티스틱스위밍은 음악에 맞춰 수중에서 여러 동작을 연기하는 종목이다. 고난도의 수영 기술을 안무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종합예술 스포츠로 ‘수중 발레’로도 불린다. 지난 2017년부터 기술성보다 예술성을 더 중시하기 위해 기존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에서 이름을 바꿨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SMAT 팀의 철학이다. 김희진 감독은 SMAT 팀과 도전을 함께 하며 "앞으로 더 많은 남자 선수들이 국내 및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2015년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에서 처음으로 아티스틱스위밍 남녀 혼성듀엣 경기가 열린 이후로 이 종목의 남자 선수들의 참여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2023 후쿠오카 세계선수권에는 '남자 솔로' 경기와 함께 단체전 남자 선수의 출전이 허용됐고,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아티스틱스위밍 단체전에 중국과 태국의 남자 선수가 처음으로 출전했다. 국내 1호 남자 아티스틱스위밍 선수인 변재준 선수를 비롯해 최근 각종 국제대회에서 남녀 혼성팀들의 완성도 높은 연기가 이어지면서 아티스틱스위밍 남자 올림피언의 탄생이 차츰 가까워지고 있다.

사진·글=우상조 기자 [email protected]





우상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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