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연휴를 맞아 우리 역사를 다룬 다양한 뮤지컬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사도세자와 영조, 중종반정과 같은 익숙한 소재에 현대적 감각에 맞는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들이다.
지난달 5일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공연중인 창작 뮤지컬 ‘쉐도우’는 조선시대 영조와 사도세자 간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 ‘임오화변’을 소재로 했다. 풀어내는 방식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현란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배경으로 뿜어나오는 록 발라드·하드 메탈 장르의 넘버는 무대를 콘서트장으로 만든다. 영조는 용포 대신 붉은 가죽 코트를 입었다. 최근 드라마 등에서 자주 쓰이는 ‘타임 슬립’(time slip·과거나 미래로 가는 이야기)도 차용했다. 사도세자가 죽어나간 뒤주가 타임슬립의 매개체가 된다. 이 작품은 이달 26일까지 이어진다.
지난달 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설공찬’은 조선시대 금서(禁書)인 『설공찬전』을 현대로 소환했다.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 당시의 정치적 격동기를 저승과 이승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역시 이달 26일까지 관객을 만난다.
연휴를 맞아 국내 관광객을 겨냥해 지역에서 개최되는 한국 역사 소재 뮤지컬 작품도 있다. 강원 영월군은 이달 2일부터 5일까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영월 장릉에서 ‘단종, 1698’을 선보인다. 영월 장릉은 조선 비운의 왕 단종의 능이다. 또 지난달 26일부터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는 ‘더 쇼! 신라’가 공연 중이다. 과거 신라와 현대를 넘나드는 타임슬립 구성이다. 10월 12일까지 이어진다.
추석 이후에도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작품이 속속 개막한다. EMK뮤지컬컴퍼니는 오는 12월 2일 서울 중구 신당동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한복 입은 남자’를 선보인다. 이상훈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조선 시대 과학자 장영실을 다룬다. 장영실은 세종의 총애를 받지만, 그가 만든 가마가 부서지는 사고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 작품은 장영실이 유럽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난다는 상상을 펼친다.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 겸 총괄 프로듀서는 “유럽 뮤지컬의 무대 미학과 한국적인 정서를 동시에 보여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해외에서 K컬처가 크게 주목 받는 상황도 한국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 늘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8월 창립한 한국뮤지컬학회 초대 부회장을 맡은 원종원 순천향대 SCH미디어랩스대학 학장은 “창작 뮤지컬의 경우 비교적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삼아 관객들의 생소함을 줄일 수 있다”며 “최근 K컬처가 세계적으로도 통하면서 한국 역사를 활용한 뮤지컬 작품 창작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역사를 무대로 올리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나가는 시도는 최근 주목할 만한 한국 뮤지컬 분야의 흐름”이라고 짚었다.
한국적 소재지만 해외에서 통할 수 있다는 제작진의 자신감도 엿보인다. ‘쉐도우’의 김현준 연출은 “한국적인 소재지만, 처음부터 글로벌하게 나가고 싶어서 만든 뮤지컬”이라며 “사도세자 이야기를 모르는 글로벌 관객도 부모·자식의 관계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전했다.
앞서 시조(時調)가 금지된 가상의 조선에서 백성들이 비밀 시조단 ‘골빈당’을 만들어 연대하는 과정을 그려낸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지난달 8일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에서 특별 공연 하며 본격적인 해외 진출의 초석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