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틀전 경찰에 체포됐던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4일 석방 명령을 내렸다. “체포의 적법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현 단계에선 체포의 필요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이유로다.
서울남부지법 김동현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이 전 위원장이 청구한 체포적부심사 심문을 마친 뒤 청구를 받아들여 인용 결정을 내렸다. 체포적부심은 피의자가 체포의 적법성·필요성을 다시 판단해 달라고 관할법원에 요청하는 절차를 말한다. 법원 판단에 따라 지난 2일 오후 4시쯤 체포돼 서울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 수용돼 있던 이 전 위원장은 곧장 석방됐다. 그는 경찰서를 나서며 “경찰·검찰이 씌운 수갑을 그래도 사법부가 풀어줬다. 대한민국 어느 한구석에는 민주주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 같아 희망을 느낀다”며 “대통령 비위를 거스르면 당신들도 유치장에 갈 수 있다는 함의가 여러분이 보시는 화면에 담겼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 부장판사는 인용 이유를 수사의 필요성과 체포의 적법성 등 부분으로 나눠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우선 수사 자체에 대해선 “피의사실의 범죄 성립 여부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상당하기는 하나 수사의 필요성이 전면 부정된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은 방송통신위원장 직무정지 상태였던 지난해 9~10월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민주당 야당 의원들은 다수의 힘을 이용해 국회를 장악하고, 의혹을 확대 재생산해 언론과 유튜브를 동원해 공격한다”와 같은 발언을 하며 정치적 중립을 위반한 혐의(국가공무원법 위반)로 이 전 위원장을 수사해 왔다.
이에 대해 이 전 위원장 변호인인 임무영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법리적 판단이 잘못됐다며 “민주당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민주당에 반대하는 목적’이라고 해석하면 민주당은 누구도 비판을 못 받는 성역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수사의 필요성은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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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의 적법성은 부정하기 어렵다 판단”
이어 체포가 적법하게 이뤄졌는지와 관련해 김 부장판사는 “피의사실 중 공직선거법 위반의 점에 대한 공소시효가 다가오고 있어 수사기관으로서는 피의자를 신속히 소환조사할 필요가 있음은 일응 인정할 수 있고,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유선 및 팩스 전송으로 여러 차례 출석요구사실을 알렸던 점에 비추어 피의자가 출석요구 사실을 몰랐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단기 공소시효로 인한 사안의 시급성에 비추어 피의자로서도 자신의 출석 가능한 일정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최대한 신속히 출석요구에 응할 필요가 있었음에도 회신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 전 위원장 측이 약속한 출석 예정일자에 결국 불출석한 것과 관련해 “국회 출석이 과연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남는다”며 “변호인이 제기하는 일부 의문점에 충분한 경청의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포의 적법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 전 위원장 측은 경찰의 체포 자체가 부당하다고 주장해왔다. 이 전 위원장은 이날 법원에 출석하며 “저를 체포할 때는 국민도 주권도 없었다”고 말했고, 임 변호사는 심문을 마친 뒤 “검찰과 법원은 저희의 불출석 사유서를 보고도 체포 영장을 청구·발부했다고 한다”며 “이런 판단에 실망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경찰이 이 전 위원장을 체포한 과정 자체는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본 것이다.
다만 김 부장판사는 현 시점에선 더이상 이 전 위원장을 구금한 상태로 조사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헌법상 핵심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이유로 하는 인신구금은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 이미 상당한 정도로 조사가 진행되었고 사실 관계에 대한 다툼이 없어 추가 조사 필요성도 크지 않다는 점, 심문과정에서 피의자가 성실한 출석을 약속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현 단계에서는 체포의 필요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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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 “위법수사 책임 물을 것”, 경찰 “체포 적법성은 인정”
이에 따라 경찰은 고민에 빠졌다. 법원 판단 이후 구속영장 신청을 고려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이어간 뒤 검찰 송치 여부를 판단할 가능성도 커졌다. 법원이 이미 한차례 구금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다시 구속을 시도하는 것은 경찰 입장에서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 결정이나 이후 나올 수사 결과와는 별개로, 이 전 위원장 수사와 체포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같은 결정을 두고도 이해 관계자마다 해석과 입장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법원 결정 직후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석방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불법적인 영장발부와 불법적인 체포ㆍ감금에 이은 위법수사에 대해 끝까지 법적책임을 물을 것이다. 미친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반면 경찰 관계자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법원은 수사의 필요성과 체포의 적법성은 인정되지만 체포의 필요성 유지, 즉 체포의 계속성이 인정되지 않아 석방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