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품고서 골똘히
궁리하고, 궁리하고, 또 궁리하는 과정을 통해 솔루션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게 결국
삶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궁리하고 궁리하면 통하고 통합니다.
‘백성호의 궁궁통통2’에서는
그런 이치를 담습니다.
#궁궁통1
“동물들이 아플 때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세요.
굶으면서
속부터 비웁니다.
왜 그럴까요?”
마주 앉은
영화배우 문숙씨가
불쑥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가 던진 물음을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아플 때
속을 비운다.
거기서 무언가
치유의 코드가
작동하나 봅니다.”
문숙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요.
음식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잠깐만요,
이건 또
무슨 말일까요.
음식을 먹는 건
속을
채우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음식을 먹는 게
비우는 일이라니,
무슨 뜻일까요.
문숙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이
명상입니다.”
먹는 일과
비우는 일,
둘은
양립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통할 수 있을까요.
#궁궁통2
“사람들은 대부분
음식을 먹으며
자신을 채우려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세요.
현대인은
아무리 음식을 먹어도
계속
허기를 느낍니다.
그러니
음식을 먹으면서
비우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음식도 명상이 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배우가 아니라
명상가와
마주 앉은
기분이었습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영화 ‘삼포 가는 길’의
여주인공으로
젊은 시절
일약 스타가 됐다가
사랑과 이별,
그리고 치유의
기나긴 여정을 통과하며
그는
어느새
내공 있는 명상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무처럼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그의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그에게서
‘자연’을 보게 하더군요.
다시
물었습니다.
“좀 더 풀어주세요.
음식을 먹으면서
어떻게
자신을 비웁니까?”
그는
잠깐, 미소를 짓더니
답을 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내 안이
채워질 수도 있고,
내 안이
비워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음식들은
우리 몸 안에
빈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그렇게 생겨난
빈 공간을 통해
치유의 에너지가
작동하는 겁니다.”
저는
‘쾅’ 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음식을 먹고서
우리 몸에
빈 공간을 만든다.
‘먹음=채움’이란
등식이 깨지고,
‘먹음=비움’이란
새로운
등식이 생겨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합니까?”
#궁궁통3
문숙 배우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그는 종종
사람들의 장바구니를
쳐다본다고
했습니다.
“장바구니를 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한눈에 봐도
열이 많고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이 있어요.
그럼
장바구니에
육류 등 바비큐 거리가
잔뜩 들어 있어요.
또 장이 약해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
장바구니에는
가공식품이 잔뜩 있어요.
반면에
채소를 잔뜩
산 사람도 있어요.
그 사람은
인상부터 다릅니다.
아주 푸릇푸릇한
느낌을 주니까요.”
그는
‘기(氣)’가 살아 있는
음식을 권했습니다.
“어떤 음식이
기(氣)가 살아 있는
음식입니까?”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전통적인 음식입니다.
우리는 요즘
새로운 음식들을
많이 먹잖아요.
그 음식 중에
20년 뒤에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을 음식이
과연
얼마나 될지
따져보세요.
전통 음식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에센스(핵심)만 남은
음식입니다.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소중한
우리의 보물입니다.”
기(氣)가
살아 있는 음식,
두 번째도
일러주었습니다.
“가공 처리가 되지 않은
통식품(Wholefood)입니다.
그래야
에너지가 살아 있습니다.”
그는
예를 하나
들어주었습니다.
“어떤 음식에
에너지가 살아 있을까.
심으면
바로 싹이 나는
씨앗입니다.
가령
통곡물과 신선한 채소,
현미 같은 것도
이에 해당합니다.”
그는
냉장고를
예로 들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밭에 있는 상추는
기가 충만합니다.
그걸 따면
기가 내려가기 시작하죠.
냉장고에
오래 보관할수록
어떻게 될까요.
기는 더 내려갑니다.
그럼
현대인들이 많이 먹는
가공식품은 어떨까요.
기가
아주 낮은 음식입니다.”
#궁궁통4
문숙 배우는
자연스러운 음식,
기가 살아 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우리 몸에
‘빈 공간’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카페 창밖의
나무를 가리키며
문숙 배우가
말했습니다.
“저 창밖에 있는
나무를 보세요.
가지가 하나
뚝 부러져도
자연적으로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도
나무처럼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의 치유력이
작동하도록
우리는
비워주는 역할을
하면 됩니다.
실제
가공식품 먹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먹어도, 먹어도
자꾸 손이 가고
자꾸만 더 먹고 싶잖아요.
우리가
자신의 몸에게
빈 공간을
주지 않는 겁니다.”
그래도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며칠
노력을 하다가도
예전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문숙 배우는
이렇게
조언하더군요.
“그걸 영어로
‘일 윌(ill will)’이라고
부릅니다.
스스로 아프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그런 습성이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우리는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먹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몸에
선물을 하듯이
값나가는
음식이나 보약으로
마음을 메우려 합니다.
그건
피멍이 들게 하고선
비싼 연고를 사서
발라주는 격입니다.
그리고
그걸 치유라고
믿는 겁니다.”
문숙 배우는
건강식을 시도하며
자신의 생활을
바꾸다 보니
뜻밖의 깨달음이
왔다고 했습니다.
“아하!
자연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자연이 있구나.
가지가 부러진
나무가
저절로 살아나듯이,
나도
내 안에
빈 공간만 만들어주면
되겠구나.
그럼
자연적으로
치유하는 힘이
알아서
작동하겠구나.”
인도에는
한국의 동의보감에
해당하는
오래된
책이 있습니다.
아유르베다입니다.
아유르베다는
자연을
세 가지 성질로 나눕니다.
순수하고
맑은 마음을 도모하는
사트바,
정열과 율동, 폭력 등을
대표하는
라자스,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타마스.
문숙 배우는
음식도
똑같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건강을 지켜주는
사트바 음식,
자극성이 강한
라자스 음식,
가공식품 등
죽은 음식을 대표하는
타마스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