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결혼 생활을 이어오던 A씨는 남편이 자신을 속이고 12년 동안 외도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남편의 휴대전화에서 한 여성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발견하면서다. 이에 A씨는 해당 여성인 B씨를 상대로 지난해 2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같은해 3월엔 B씨로부터 “남편을 더는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다. 외도 사실을 부인하던 B씨는 A씨가 해당 동영상의 캡처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A씨는 같은 해 11월 B씨로부터 고소장을 받았다. A씨가 성관계 동영상을 B씨의 남편에게 보냈다고 주장하면서다. B씨는 그때부터 지난 4월까지 5차례에 걸쳐 명예훼손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촬영물 유포 협박 등 혐의로 A씨를 고소했다. 또 A씨가 각서를 쓰도록 강요했다고도 주장했다. 결국 A씨는 서울중앙지법에서 강요 혐의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무고 등 혐의로 B씨를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A씨 측은 “피해자와 가해자 위치가 뒤바뀌었다”고 호소한다. A씨는 “남편이 외도하고 있었다는 충격을 추스를 새도 없이 B씨로부터 무차별적인 소송 공격을 당하느라 매일 소송 서류를 뒤적이며 아픈 기억을 되새기고 있다”며 “이런 현실이 정당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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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외도 입증하려다 형사소송
2015년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 외도한 배우자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은 사실상 민사·가사 소송만이 유일해졌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배우자의 외도 책임을 입증하려다가 형사소송에 휘말려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민사·가사 소송에 제출하기 위해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등 증거를 수집하려다가 역으로 고소를 당하게 되는 식이다.
배우자 승용차의 블랙박스를 열람하거나 메모리 카드를 가져오다가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대전지법은 지난 3월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법률 위반 등 혐의를 받는 30대 여성 C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C씨는 이혼 소송 중인 남편의 외도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남편의 승용차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챙기고,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장치를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남편의 비밀을 침해하고 동의 없이 위치 정보를 수집하는 등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아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몰래 녹음을 하다가 처벌받은 경우도 있다. 대구지법은 2023년 5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 D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D씨는 아내의 외도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승용차에 녹음기를 설치해서 대화 내용을 녹음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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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수집 단계에서부터 합법성 따져야"
법조계에선 간통죄 폐지 당시 ‘불륜 피해자들이 받을 고통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과 동행해 외도 현장에 합법적으로 들어가 증거를 수집했던 과거와는 달리 증거 확보의 의무를 개인이 지게 되면서 생긴 결과라는 취지다.
이승혜 법무법인 이승혜앤파트너스 변호사는 “간통죄가 사라지면서 합법적이었던 증거 확보 수단이 범죄가 되고, 상대방은 이를 형사 소송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이라며 “가정이 파괴당한 피해자는 도덕적인 우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형사적으로도 유리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불륜 가해자가 피해자를 공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인철 법무법인 리 이혼전문 변호사는 “최근 법정에선 증거 수집 과정의 합법성을 하나하나 따지는 추세”라며 “증거 수집 단계에서부터 변호인의 도움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