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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선배에 속아 캄보디아 갔다가…슬픔에 잠긴 고향마을

중앙일보

2025.10.13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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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당국 합동단속반이 지난 8월 캄폿주에서 펼친 단속 작전에서 체포한 중국인들을 현지 크메르타임스가 보도했다. 11일(현지시간) 캄보디아 국영 AKP 통신에 따르면 전날 캄보디아 깜폿지방검찰청은 살인과 사기 혐의로 A씨(35) 등 30~40대 중국인 3명을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지난 8월 캄보디아 깜폿주 보꼬산 인근에서 20대 한국인 대학생 박모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캄보디아에서 고문당해 숨진 한국인 대학생과 관련해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앞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대포통장 모집책 홍모(20대)씨를 상대로 윗선 수사가 물살을 타고 있다.

13일 경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충남 지역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피해자 박모(22)씨는 같은 대학에서 만난 선배인 홍씨 소개로 캄보디아로 출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점조직 형태로 움직인 모집책

앞서 박씨는 지난 7월 17일 가족에게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캄보디아로 출국했고 3주 뒤인 8월 8일 캄보디아 깜폿 보코산 인근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지역은 한국인을 상대로 한 감금 피해가 잇따라 발생한 곳이다.

경찰은 홍씨가 속한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면서 수사망을 피해 왔던 것으로 보고 있다. 점조직은 소수의 인원이 느슨하게 연결돼 각자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상시적인 명령 체계나 공식적 관리자가 없는 조직 형태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일부 조직원 검거만으로는 전체를 추적하기 어렵다.
캄보디아에서 범죄조직의 고문에 의해 숨진 경북 출신 대학생 추정 모습. 사진 텔레그램 '범죄와의 전쟁2' 채널 캡처

지난달 구속기소 된 홍씨에 대한 첫 재판은 다음 달 13일 대구지법 안동지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두 달 넘게 돌아오지 못한 시신

경찰은 대포통장 모집 업무를 맡은 조직을 상대로 통신 기록, 계좌 거래 내용 등을 통해 국내외 추가 범행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또 이르면 20일쯤 공동 부검을 위해 캄보디아 현지로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시신은 부검과 행정 절차 지연으로 두 달 넘도록 국내로 운구되지 못하고 있다.

숨진 박씨는 캄보디아 현지에서 극심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박씨와 함께 감금돼 있다가 구조된 A씨는 박 의원실에 “박씨가 너무 많이 맞아서 치료했는데도 걷지 못하고 숨을 못 쉬는 정도였다”라며 “보코산 근처 병원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사망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 캄보디아 현지 경찰은 박씨 사망진단서에 사망 원인을 ‘심장마비(고문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로 적시했다.

박씨가 캄보디아에 머무는 동안 협박범은 박씨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박씨가 사고를 쳤으니 해결해야 한다”며 5000만원이 넘는 돈을 요구했다. 이 협박범은 한국계 중국인(조선족) 말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캄보디아 내 한국인 범죄 피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의 질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캄보디아 당국은 박씨 고문·살해 사건과 관련해 중국인 3명을 체포해 살인 등 혐의로 기소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당국은 도주 중인 공범 2명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의 성격상 해외에서 발생한 국외 범죄로 국내 수사로는 한계가 있다”며 “외교 경로를 통한 적극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부친, 술 계속 마시며 괴로워해”

한편 박씨가 유년시절을 보낸 경북 예천군 고향 마을은 13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박씨의 아버지 등 유족들은 집에서 외부와 단절한 채 머무르고 있었다. 고향 집의 마당에는 화물차가 세워져 있었고, 주변은 잡동사니로 어지럽혀 있는 모습이었다. 마당 한쪽 개집에 목줄에 묶여 있는 반려견 한 마리가 외롭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인근에서 만난 70대 주민은 “사건이 발생한 후 박씨의 아버지는 일도 모두 접고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은 채로 집에서 술만 계속 마시며 괴로워했다. 그와 알고 지내던 주민들이 모두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박씨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일용직 등 여러 일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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