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밴쿠버국제영화제(VIFF) ‘Spotlight on Korea’ 섹션의 오프닝 상영작으로 서은선 감독의 첫 장편 ‘훈련사(Wrangler)’가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었다. ‘Spotlight on Korea’는 문화체육관광부(MCST)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이 협력하고, ‘전주국제영화제(JEONJU IFF)’와 밴쿠버국제영화제(VIFF)가 공동 기획해 ‘2024-2025 한국-캐나다 상호 문화교류의 해’를 기념해 한국영화의 매력을 해외에 알리고, 양국 영화계의 교류를 확대하는 자리다.
“A reminder of exceptional craft” 한국영화의 정교함에 보내는 찬사
상영에 앞서 VIFF 프로그래머 커티스 월러스척(Curtis Woloschuk)은 무대에 올라 “이번 프로그램은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 만들어진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자, 밴쿠버영화제가 오랜 전통으로 이어온 ‘우수한 한국영화’와 ‘새로운 감독 발굴’의 흐름을 잇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그는 “‘훈련사’는 세밀한 인물묘사와 도덕적 긴장감, 탁월한 톤의 조율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며 “올해 ‘New Breed’ 섹션의 이름을 탄생시킨 영화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지자, 서은선 감독은 “저의 첫 장편영화를 이곳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며 “서로를 믿지 못하는 자매와 떠돌이 개의 이야기인데, 즐겁게 관람해 주시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간결하지만 자신감이 묻어난 인사였다.
“사회라는 견사 속의 인간들”
상영 후 진행된 Q&A에서는 작품의 주제와 연출 과정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한 관객이 “영화가 굉장히 리얼하게 느껴졌다. 다큐멘터리처럼 찍은 것인지 궁금하다”고 묻자, 서 감독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기보다는, 인간이 사회라는 견사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배우들에게 자유를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제 안에서 철저히 통제된 움직임으로 연기하길 원했죠. 그런 억압과 제약이 이 세계의 본질이기도 하니까요.”라고 답했다.
그 말처럼, ‘훈련사’는 자유로운 카메라 대신 조율된 시선으로 인물들의 감정선을 밀도 있게 쌓아간다. 감독은 배우들의 동선을 무용처럼 구성하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 통제와 순종, 자유와 욕망의 경계를 시각화했다. 함께 무대에 오른 배우는 웃으며 “처음엔 감독님이 자유롭게 탐색하라고 했는데, 결국엔 모든 걸 통제하더라”며 “그래서 오히려 제 캐릭터가 더 정확하게 표현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관객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창작자는 관찰자이자 피사체”
사회자가 “남편 캐릭터가 가족을 관찰해 글을 쓰는 설정이 실제 경험에서 나온 것이냐”고 묻자, 서 감독은 웃으며 “사실 정확해요. 제 남편도 드라마 작가예요. 영화 속 인물처럼 의식하고 쓴 건 아니지만, 만들고 나니 제 안에도 그런 면이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저는 창작자로서 늘 인간을 관찰해요. 가끔은 선을 넘기도 하죠. 하지만 그게 창작자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 고백은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영화 속 자매의 심리전은 단순한 갈등을 넘어, 인간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통제하려는 창작자의 시선으로 읽혔다.
마지막 질문은 분위기를 가볍게 바꿨다. “그 강아지가 사람을 무는 장면은 어떻게 찍었나요?”라는 물음에 감독은 웃으며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소매 안에 마네킹 손을 넣고, 강아지가 흥미를 느낄 만한 간식을 묻혀 촬영했어요. CG는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답했다.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사회자는 “모두 긴소매를 입고 있어서 사실적인 장면이 완성됐다”고 재치 있게 마무리했다.
관객과 평단의 반응
상영 직후, 현지 언론과 관객들은 ‘훈련사’를 “섬세하고 대담한 데뷔작”이라 평했다. 리얼리티와 통제의 경계를 섬세하게 다룬 연출, 배우들의 절제된 감정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통한 사회적 은유는 밴쿠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관객은 “이 영화는 개를 조련하는 이야기 같지만, 결국 인간을 조련하는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Spotlight on Korea’는 단순한 상영 섹션이 아니라, 한국영화의 새로운 세대가 세계와 대화하는 무대였다. 전주국제영화제와 밴쿠버국제영화제가 함께 만든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계에서 가진 미학적 깊이와 다양성을 증명한 현장이었다. 그 시작에는 바로 서은선 감독의 영화 ‘훈련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