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대어’ 브라질을 낚으며 환호한 날, 한국축구는 ‘난적’ 파라과이를 잡고도 흥행 참패로 고개를 숙였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파라과이를 2-0으로 꺾었다. 전반 15분 엄지성(23·스완지시티)이 선제골, 후반 30분 오현규(24·헹크)가 추가골을 터트렸다.
나흘 전 남미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며 0-5로 완패한 홍 감독은 ‘방패’를 그대로 꺼내 들었다. 파라과이전에도 3-4-2-1 포메이션의 ‘스리백 전술’을 고수했다. 다만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의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해 중앙에서 왼쪽으로 이동 시켜, 중앙수비 3명을 왼쪽부터 김민재-박진섭(전북)-이한범(미트윌란) 순으로 세웠다.
전진 패스가 좋은 김민재가 활발히 움직이며 왼쪽 측면 라인이 살아났다. 전반 15분 황인범(페예노르트)이 왼쪽 측면으로 공을 내주자, 오버래핑한 왼쪽 윙백 이명재(대전)가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렸다. 상대 수비가 어설프게 걷어낸 공을 정면을 파고든 2선 공격수 엄지성이 넘어지며 오른발로 차 넣었다.
오른쪽 윙백 김문환(대전)은 전반 39분 질풍처럼 달려 태클로 공을 따냈다. 위기도 있었다. 전반 42분 이한범의 치명적인 백 패스 실수로 허용한 1대1 상황에선 골키퍼 김승규(도쿄)가 멋진 선방으로 마무리했다. 후반 25분엔 상대 슈팅이 골포스트와 크로스바를 잇달아 강타했다.
아슬아슬한 리드를 이어간 후반 30분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이 후방에서 침투패스를 찔러주자 문전쇄도한 오현규가 골키퍼 1대1 상황에서 추가골을 터트렸다. 홍 감독이 후반 교체투입한 두 장의 공격 카드가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두 선수는 지난달 멕시코전에서도 득점을 합작한 바 있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브라질전에 전혀 안됐던 양쪽 윙백의 공격 가담이 보다 활발해졌다. 이강인~오현규 역습 연결이 반드시 필요했다”면서도 “브라질보다는 기량이 떨어지는 파라과이를 맞아 실점에 가까운 장면을 잊으면 안된다. 순간적인 원투패스와 침투에 하프스페이스와 수비 라인사이가 너무 쉽게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센터백 조합, 중원 조합, 윙백 주전이 이제는 어느 정도 최선의 라인업이 무엇인지 설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평가전에는 조직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승리와 함께 브라질전 0-5 완패의 아픔을 일부 씻어냈다. 두 달 뒤 북중미월드컵 조 추첨을 앞두고 ‘포트2(2번 시드)’의 마지노선인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 이상의 순위를 지켜낼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러나 6만6000여명을 수용하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이날 2만2206명만 찾아, 무려 4만3000석 정도가 텅텅 비었다. 나흘 전 6만3237명이 몰렸던 브라질전에서 대패가 팬들의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킥오프 직전, 손흥민(LAFC)에 한국축구 A매치 최다 출전(137경기) 기념 유니폼을 전달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야유가 나왔다. ‘한국축구 성지’의 빈 좌석은 홍 감독과 정 회장을 향한 팬들의 싸늘한 시선을 대변한다. 경기 최우수선수에 선정된 오현규는 “팬들이 단 한 분, 몇 분이 오시더라도 감사하다”고 했다.
들불처럼 번질 수 있었던 비난 여론을 어느 정도 잠재울 것으로 기대됐지만, 같은날 30분 전 킥오프한 평가전에서 일본이 브라질을 상대로 2골을 먼저 먹고도 내리 3골을 몰아쳐 3-2 역전승을 거뒀다. 상대 전적 2무11패에 그쳤던 일본이 브라질을 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가 열린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는 일본 팬 4만4920명이 몰렸다. 나흘 전 브라질을 상대로 힘 한 번 못써보고 졌던 한국축구와 간접 비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