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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항공, 사라진 수하물의 행방도 책임도 없었다

보도자료

2025.10.1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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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석 승객의 수하물 사흘째 행방불명… 본사 침묵 속 피해 확산
[에티오피아 항공기]

[에티오피아 항공기]

10월 11일 오후, 인천공항. 에티오피아항공 여객기에서 한 승객의 수하물이 도착하지 않았다. 공항 수하물 컨베이어벨트가 멈춰 섰을 때, 비즈니스석 탑승객이던 그는 짐이 나오지 않는 걸 확인했다. 직원은 즉시 수하물 사고 보고서(PIR)를 작성하며 “비즈니스석 승객이니 내일(10월 12일)에는 반드시 도착할 것”이라 장담했다. 확신에 찬 안내였지만, 결과는 달랐다. 다음 날 오후에도 수하물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승객은 조업사인 에티오피아항공 수하물팀에 연락을 시도했다. 그러나 본사 연락처를 요청하자 “직접 연락은 불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모든 클레임은 이메일로만 접수해야 한다”는 안내뿐이었다. 승객은 곧바로 항의 메일을 보냈지만, 에티오피아항공 본사로부터는 단 한 통의 회신도 받지 못했다.
 
12일 오후, 그는 다시 네 차례에 걸쳐 수하물팀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현재 파악 중”이라는 말이 반복될 뿐, 구체적인 설명은 끝내 들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늦게 도착한 메일 한 통에는 상반된 문장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내일 도착을 안내한 적 없다.” 그 아래엔 “서울 주소라 오늘(12일) 도착으로 안내했다.” 하루 차이의 착오가 아니라, 기록 자체가 뒤집힌 모순이었다.
 
분실된 수하물 안에는 출장용 시제품과 업무 자료가 들어 있었다. 이로 인해 수개월 준비한 해외 미팅이 취소되며 일정에 큰 차질이 생겼다. 승객은 “가장 황당한 건 사과 한마디조차 듣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문제의 원인조차 밝히지 않은 채 기다리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항공은 아프리카 최대 항공사로, 유럽·중동·아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규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고객 대응은 사실상 ‘이메일 자동응답’ 수준에 머물렀다. 에티오피아항공 한국지사 또한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해당 승객이 경유편을 이용해 이용했던 인천·카이로·아디스아바바 공항은 모두 RFID(무선주파수 인식) 기반 수하물 추적 시스템을 갖춘 국제 허브공항이다. 기술적으로는 실시간 위치 확인이 가능한 환경임에도, 에티오피아항공은 사흘이 지나도록 가방의 위치조차 특정하지 못했다.
 
항공정책 전문가 F씨는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책임감의 부재”라며 “조업사는 단순 접수만 담당할 뿐, 본사가 직접 지시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외항사의 무책임 구조는 반복돼 왔다. 국내 항공사는 수하물 지연·분실 시 즉시 추적 보고서와 임시 보상 절차를 밟지만, 외항사는 본사 승인 절차를 이유로 대응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국토교통부도 항공기 운항이나 안전 문제는 관리하지만, 외항사의 서비스 불만까지 실질적으로 통제하기는 어렵다. 결국 피해자는 외국 본사와 개인적으로 분쟁을 해야 하는 구조에 놓인다.
 
승객은 이후 여러 차례 메일을 추가로 보냈지만, 답변은 여전히 ‘조사 중’이었다. 공항 수하물 추적 시스템에는 아무 기록도 남지 않았다. “사흘이 아니라 열흘이 지나도 이런 식이라면, 이건 단순한 분실이 아니라 책임 포기입니다.” 그는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외항사들의 국내 대응 구조가 안고 있는 오래된 문제로 본다.
 
항공정책연구원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보호법이 외국 항공사 본사까지 직접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며 “피해가 발생해도 실질적 구제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 “정부 차원의 외항사 책임 강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나흘이 지난 지금까지 에티오피아항공 본사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승객은 여전히 수하물의 행방을 모른다. 확신처럼 들렸던 “내일 온다”는 말은, 결국 아무 책임도 남기지 않은 거짓이 됐다.
  

정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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