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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가' 때리며 사전통보도 않은 中…習 방한 앞두고 길들이기 나섰다

중앙일보

2025.10.15 01:13 2025.10.15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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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화오션 제재를 두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앞둔 '한국 길들이기'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중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를 정조준하며 한국에 입장 정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8월 2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에 미국 해양청 발주 국가안보 다목적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가 정박해 있다. 뉴시스
지난 14일 중국 상무부의 한화 오션 미국 자회사 5곳 제재는 사전 통보도 없이 이뤄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첫 방미 때 방문한 한화 필리조선소도 이에 포함한 건 이번 제재가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조치라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특히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활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레버리지인 조선업을 중국이 흔드는 모양새다. 앞서 중국 관영 매체는 지속적으로 마스가를 겨냥해 "고위험 도박"(지난 7월 30일, 글로벌타임스)이라거나 "미국의 조선업 재건은 정치쇼"(지난 9월 8일, 환구시보)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중국이 한·미 조선 협력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미국의 조선업 부활이 곧 해군력 증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의 충돌 가능성에 대비해 군함 건조를 확대하고, 아시아 내 동맹·우방국과 함께 선박 유지·보수·정비(MRO) 거점을 구축하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자국을 겨냥한 직접적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의 한화오션 제재를 산업적 측면을 넘어 안보 사안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미 투자 요구에 부응하려면 마스가 협력이 불가피하지만, 동시에 미·중 해양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놓이게 됐다.

지난 8월 26일(현지 시간) 이재명 대통령이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조시 샤피로 펜실베니아 주지사 등과 함께 조선소를 시찰하는 모습. 이 대통령 소셜미디어

중국의 '마스가 때리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시진핑은 오는 31일부터 이틀 동안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후로 방한한다. 이에 앞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사전 조율 차원에서 조만간 방한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한·미 조선 협력에 대한 경계심을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새 정부 출범 뒤 한국 대통령이 방중하기 전 시진핑이 먼저 방한하는 걸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여기며 한국을 견인하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기류도 감지된다. 중국은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도 각급에서 "균형 외교"와 "대국 관계 병행 발전"을 강조하며 한국의 대미 밀착을 견제했다.

정부와 업계는 한화오션의 미국 내 자회사들이 중국과의 사업 연계성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제재가 실질적 영향보다는 상징적 성격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중국이 향후 제재 수위를 높일 경우 중국이 주도하는 해운 노선이나 원자재 공급망에서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교부 당국자는 “업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관계 부처와 업계, 중국 측과 긴밀히 소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부는 한·중 공급망 협력 채널과 주중 대사관 등을 중심으로 중국 측과 접촉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8월 26일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건조 중인 대형 크레인과 선박. 뉴스1

중국의 제재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중국은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이 미국의 ‘무역법 301조’ 조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미국이 해당 조사를 근거로 중국 선박에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자 중국이 같은 방식으로 맞불을 놓는 식이다. 중국이 조선업 외 다른 산업에까지 '한국이 미국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제재는 안보 영역에서 한국이 미국과 밀착하는 흐름을 중국이 견제하려는 의도일 것”이라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당시 한국 기업이 타격을 입었던 상황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 입장에서는 해양 패권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어 한화오션을 통해 한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은 최근 희토류, 대두, 식용유 등 품목을 바꿔가며 상호 무역 보복을 이어가고 있으며, 경주에서 열릴 미·중 정상회담 일정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말 일본을 거쳐 1박 2일로 한국을 방문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지만, 일본의 새 총리 선출 등 변수가 남아 있어 최종 일정은 조율 중이다.

또한 중국의 한화오션 제재로 미뤄볼 때 정부가 추진하던 시진핑의 국빈 방한도 사실상 어려워진 분위기다. 약 보름 뒤 한국에서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같은 시기 연쇄적으로 열리면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시대에 종언을 고한 이재명 정부의 외교 전략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현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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