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례적인 지시를 내린다.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동부지검 합동수사팀에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독자적으로 엄정히 수사하라”라는 내용이다. 이어 외압 의혹을 폭로한 당사자인 백해룡 경정을 파견하는 등 수사팀을 보강하고, 수사책임자인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에게는 필요할 경우 수사검사를 보강하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이 엄정 수사를 주문하는 것을 넘어, 수사팀 구성까지 챙기는 것은 너무 생소한 일이다.
이 대통령, 수사팀 구성까지 지시
국회에선 이진숙 구속수사 압박
수사기관의 독립성 기로에 놓여
게다가 이 지시가 검찰청법을 어긴 것이라는 논란까지 일었다.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의 설명을 보면 법무부 장관을 통해서 방침을 내렸고 임 지검장에게도 별도의 지시가 내려갔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동부지검은 13일 오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대검에 백 경정의 파견과 수사 검사 증원 여부를 대검이 결정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지시한 백 경정 등 경찰의 파견 여부 등은 일선 지검이 아니라 검찰 전체를 지휘하는 대검찰청의 권한이고, 서울동부지검은 경찰청과 직접 협의할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에서다.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대통령→법무부 장관→검찰총장→서울동부지검장 순으로 지휘가 이뤄져야 하는데 뭔가 뒤죽박죽이 된 것 같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차장)은 이 과정에서 대체 무슨 역할을 했나. 패싱 당하고 아무 말 못 하는 것은 아닌가. 더구나 이런 지휘는 구두 지시가 아닌 문서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렇게 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파견을 지시한 백 경정의 행보가 점입가경이다. 임 지검장이 사건의 제보자격인 백 경정이 기존 수사팀에 합류하는 것은 ‘셀프 수사’ 논란을 부르고 공정성 시비가 생길 수 있다며 외압 의혹과 직접 관련이 없는 수사팀을 따로 만들어 백 경정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그러자 백 경정은 기존 검찰 중심의 수사팀은 위법하게 구성된 불법단체라고 직격했다. 이어 자신이 주도하는 25명의 수사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존 수사팀에 외압 의혹과 관련된 인사가 있다는 것이 백 경정의 주장이지만, 임 지검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백 경정은 파견 첫날인 15일은 미리 약속한 방송에 출연한다며 휴가를 냈다. 16일 첫 출근을 하면서는 “불법단체에 출근한다. 신념이 흔들린다. (별도 수사팀 구성은) 모욕적이다. (임 지검장과는) 소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쏟아냈다. 이게 공직자가 할 발언인가. 누구를 믿고 이러는 건가.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지난 6월에 수사팀이 구성돼 8월에 임 지검장이 지휘권을 넘겨받았는데 벌써 10월이다. 수사팀은 20여 명을 입건하고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지만 이 대통령의 눈에 차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백 경정은 외압 의혹의 근원을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로 보고 있다. 백 경정을 합류시키라는 지시도 바로 이를 밝혀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임은정-백해룡의 갈등과 대립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다름 아닌 이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다. 백 경정의 수사팀 합류는 애초부터 부적절했다.
국회에서도 노골적인 수사 압박이 이뤄진다.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은 행안위 회의에서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에게 법인카드 부정 사용 혐의를 받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두고 “필요하다면 즉각적인 구속수사도 불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발언했다. 유 대행은 당시 “신속하게 수사하도록 국가수사본부에 지시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물론 그 이후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이 전 위원장이 방통위가 폐지되면서 자리를 잃자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경찰에 체포돼 수갑을 찬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검찰청을 없애도 대통령이 이런 식의 지시를 하면 수사기관은 독립성을 상실한다.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할 가능성도 커진다. 수사기관의 책임자는 이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회와 집권당의 요구를 흘려들을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행정과 수사, 재판이 분리되지 않았다. 국법이 있기는 했지만 상당 부분은 고을 원님이 재량으로 처리했다. 이런저런 징후로 보면 이미 ‘원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걱정이 든다. 지금 여당이 심혈을 기울이는 법원 길들이기가 끝나면 ‘원님 재판’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