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최태원(65)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 판결의 재산분할 부분을 파기환송한 건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은 “뇌물의 일부로서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을 SK그룹 성장에 대한 노 관장의 공동 기여를 인정한 항소심 판단과 정반대다. 노 관장 입장에선 2심에서 최후의 카드로 선친의 비자금을 세상에 공개한 게 ‘독’이 된 셈이다.
민법 746조는 ‘불법이 원인인 재산을 제공했을 때는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 ‘불법원인급여’ 조항과 함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민법 103조를 근거로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의 보호영역 외에 두어 스스로 한 급부의 복구를 어떠한 형식으로도 소구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해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 영역 밖에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노 관장 측이 “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여도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다”고 배척했다. 뇌물로 비자금 제공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전체 법질서 관점에서 용인될 수 없는 이상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에서의 기여를 포함해 어떠한 형태로든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고 하면서다.
즉,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실제로 있었는지, 그 돈이 SK에 유입됐는지 등 사실관계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이날 비자금뿐 아니라 최 회장이 친인척에게 증여한 주식이나 SK그룹에 반납한 급여 등도 대법원은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최 회장은 2012년부터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에 대한 증여, SK그룹에 대한 급여 반납 등으로 927억7600만원을 처분하고, 최 수석부회장의 증여세 246억원을 대신 납부했다. 또 2014년 한국고등교육재단 등에 SK C&C 주식 9만1895주, 최종원학술원에 SK 주식 20만 주, 친인척 18명에 SK 주식 329만 주 등 증여한 주식에 대해서다. 앞서 항소심은 “최 회장이 노 관장의 동의나 양해 없이 부부 공동생활과 무관하게 임의로 처분한 재산”이라며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했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재산 처분 시기가 항소심이 인정한 혼인 관계 파탄일(2019년 12월 4일) 이전일 뿐만 아니라 처분의 목적 또한 최 회장이 SK그룹의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영 활동의 일환으로 부부 공동재산의 유지 또는 가치 증가를 위한 것이라고 불 수 있다면서다.
대법원은 “혼인 관계가 파탄된 이후 부부 일방이 적극재산을 처분했다면 해당 적극재산을 사실심 변론 종결일에 그대로 보유한 것으로 보아 분할 대상 재산에 포함할 수 있으나, 그 처분이 부부 공동생활이나 부부 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이혼소송에서 이른바 ‘재산 빼돌리기’나 ‘재산 숨기기’를 목적으로 이혼을 앞두고 재산을 처분하는 상황을 비롯해 이혼소송 시점에 어떠한 재산이 분할 대상이 되는가에 관해 대법원이 판단한 첫 기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