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이 ‘세기의 이혼’으로 불린 건 재산 분할액이 1심 665억원에서 2심에선 20배가 넘는 1조3808억원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또 재판 과정에서 장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숨겨진 비자금 300억원이 증거로 제출되는 등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정경유착과 같은 어두운 현대사가 세상에 드러나기도 했다.
1심은 통상적인 가사 사건처럼 흐르는 듯했다. 노 관장은 최 회장이 보유한 그룹 지주사 SK㈜ 주식 중 50%와 계열사 주식 일부, 부동산 등 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재산 분할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SK 주식은 재산분할 대상이 아닌 ‘특유재산(特有財産,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 재산)’이라는 최 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여 주식 등을 제외한 665억원만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노 관장이 주식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내조와 가사노동만으로는 주식과 같은 사업용 재산을 분할할 수 없다”고 하면서다.
이는 2심에서 극적으로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 관장 측이 새로 제출한 선친 비자금 300억원 관련 증거를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 선대회장의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의) 성공적 경영 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SK 주식을 비롯한 최 회장의 재산이 모두 분할 대상이 되며 재산분할 액수는 1조3808억원까지 뛰었다. 1심 분할액의 20배가 넘는 액수다. 노 관장의 모친인 김옥숙 여사가 ‘선경 300’이란 메모와 함께 보관해 온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이 근거였다.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한 최 회장은 최종현 선대 회장의 육성 녹음파일을 법원에 제출하며 맞불을 놨다. 녹음에는 “사돈 힘을 빌리는 건 일절 피했다”는 취지의 발언이 포함됐다. 최 전 회장이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뒤 1995년 “시장 가격에 비싸게 샀다”고 말하는 녹음 파일도 제출했다고 한다.
대법원은 1년3개월의 심리 끝에 16일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내면서 재산분할액을 재산정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