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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잔혹 피싱왕' 정체, 얼굴 갈아엎은 한국 호빠남이었다

중앙일보

2025.10.16 13:00 2025.10.1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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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CCTV에 포착된 윤진호. 전신 문신이 부각돼 보인다. 호스트바 출신으로 보이스피싱 범죄에 입문한 그는 ‘이승현’이라는 가명을 쓰고 중국 연길에 조직을 세웠다. 수하의 조선족 청년들을 통해 국민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를 총지휘했다. 중앙포토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延吉)시 외지의 한 별장.
연길 국제공항에서 차편으로 40분 걸리는 곳이다. 별장 입구에는 쇠사슬을 걸어둬 출입을 막아놨고 건물 창마다 비닐 커버를 씌워둔 터라 겉으로 보기엔 집주인이 오래 방치해둔 인상이다.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를 등쳐야 하는 생존 논리가 그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누가 고함을 지르자 20대 남성들이 방에서 튀어나와 일렬로 선다. 일조 점호다. 새벽 2시까지 쇠파이프로 ‘빠따’를 맞으면서 숙지한 보이스피싱 대본을 다시 검사받아야 한다. “고객님은 신용이 낮아 대출이 어려우니 일단 거래 실적부터 쌓으셔야 합니다. 일단 저희 직원을 만나 현금을 주시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이상원 검사입니다. 최근 저희가 검거한 금융사기 조직의 계좌 내역에 선생님 이름이 포함돼 입건되셨다는 사실 알려드리고…, 아, 그렇게 의심되시면 저희가 고지문을 선생님한테 보낼게요. 주소가….”

직원 하나가 중간에 대본을 씹자 관리책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는다. 그러고는 바닥에 엎어진 직원에게 발길질을 해댄다. 저 꼴이 나지 않으려면 무슨 말이든 쉴 새 없이 내뱉어야 한다. 직원들은 허공을 노려보며 폭행 현장을 외면한 채 대본을 읊어댄다.

그래도 사람 손이면 버틸 만하다. 실수를 연발했다가 쇠파이프로 얼굴을 맞아 광대뼈가 부서진 직원도 있다. 조선족 특유의 성조를 지우지 못한다며 냄비에 팔팔 끓인 물을 정수리에 들이붓기도 했다.

“다들 저 새끼 보이지.” 조직의 총책이 나타나 복도 한편에 무릎 꿇은 속옷 차림의 남성을 가리킨다. 얼굴의 눈가가 함몰돼 있다. 수술하지 않으면 그대로 뼈가 굳어 기형이 될 판이다. 2주일 전 한국으로 도주했다가 조직의 감시책에게 붙잡혀 저렇게 됐다. “도망가고 싶으면 가라. 어차피 조선족 풀면 느그들 찾는 거 금방이야. 300만원이면 팔다리 자르는 건 일도 아니고. 역 앞에서 앵벌이나 뛰는 불효자 되고 싶으면 한번 나가 봐.”
중국 연길시 외곽의 한 별장. 창에는 비닐이 씌워져 있고 입구에는 쇠사슬이 걸려 있다. 조직원들이 합숙하며 대본을 암기하고 점호를 받던 보이스피싱 숙소로 추정된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등쳐야 하는 생존 논리가 이곳에서 작동했다. MBC PD수첩 유튜브 캡처
총책의 이름은 이승현. 본명은 아닐 것이다. 전신에 그려 넣은 문신만이 그의 지문처럼 남았을 뿐이다. 순수 한국인임에도 조선족 소도시에 보이스피싱 조직을 차리고 공안들과도 호형호제하는 관계라고 한다. 매달 주머니에 월급 정도를 꽂아주면 뭔 일이 나더라도 뒤로 빼준다고. 중국 사회에서 필수라는 ‘꽌시(關係)’ 문화다.

업무 개시를 위해 콜센터 사무실로 달려가는 직원들의 등에다 이승현은 소리 질렀다.

“한국에 가면 윤덕영이란 짭새도 꼭 만나라. 나 잡겠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모양인데 기왕 보게 되면 안부나 전해. 조만간 배때기에 칼침 들어갈 거라고.”


(계속)

2017년 3월, 수서경찰서 수사과 지능팀 윤덕영 형사는 보이스피싱 신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현장에서 보이스피싱 하선을 붙잡았고 중간책 체포까지 성공했다.

주원목(가명·27). 중국 동북 3성 중 하나인 흑룡강성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범죄계에 입문했고 특정 조직에 속하기보단 검은돈을 세탁하고 배달하는 말(馬) 중의 왕으로 유명했다.

긴급 체포 후 경찰서 유치장에 가둬놓을 수 있는 기간은 이틀. 주원목이 묵비권을 행사하자 윤 형사는 다량의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받아낸 뒤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넘겼다. 그리고 신병이 서울구치소로 넘어가기 전날 밤, 주원목은 생각을 바꿨는지 한 이름을 거론했다.

그 이름은 ‘이승현’이었다.
중국 연길에서 잔혹하다고 소문 난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의 정체.
순수 한국인은 어쩌다 보이스피싱 황제가 되었나.

“성형과 보톡스로 얼굴을 갈아엎었다.” 호스트바 선수였던 그의 사연,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연변 '잔혹 피싱왕' 정체, 얼굴 갈아엎은 한국 호빠남이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67672

“그 형사놈 팔다리 가져와라” 보이스피싱 황제, 2억 걸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69583



안덕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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