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발생한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 주범에게 허위진단서를 발급해준 의사가 올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진료심사평가위원으로 임명된 것과 관련, 국정감사에서 여야의 질타가 쏟아졌다. 강중구 심평원장은 "오래된 사건이라 괜찮을 줄 알았다" 등의 해명으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여대생 청부살해는 류원기 전 영남제분 회장 부인이던 윤길자씨가 대학생 A씨(당시 22세)를 자신의 사위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의심해 청부살인한 사건이다. 윤씨는 2004년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주치의였던 박병우 전 연세대 의대 교수가 발급해준 허위진단서 덕에 형 집행 정지를 받고 병원 호화병실에서 생활했다.
박 전 교수는 해당 혐의로 기소돼 2017년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퇴임한 뒤 올 4월 심평원 상근위원으로 임명됐다. 그는 강중구 원장과 연세대 의대 동문이다.
박 위원 채용 문제는 17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강 원장은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의 관련 질의에 "사건이 10여년이 지났고 임용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위원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을 거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거듭된 질타에 "결격 사유에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됐더라도 5년 이상이면 된다고 돼 있다. 오래된 사건이라 괜찮을 줄 알았다"고 설명했다.
강 원장은 '블라인드 채용'이라 박 위원 임명 과정엔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은 사건 당시 강 원장이 박 위원의 탄원서를 썼다는 점 등을 들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3년 형 집행 정지가 어려워진 윤씨가 세브란스병원에서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으로 옮길 당시, 일산병원의 진료부원장이 강중구 원장인 만큼 사건 내용을 모를 리 없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강 원장은 "판사가 판단하되 진료는 좀 보게 해달라는 내용으로 탄원서를 쓰긴 했지만, 주위에 탄원서 작성을 요청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국감장에선 박 위원에 대한 인사 처분이 즉각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보건복지부는 즉각 조사에 착수하고, 심평원은 당장 박씨를 해촉하라"고 밝혔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도 "(박 위원이) 공적 임무를 맡기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 신속히 해촉을 포함한 법적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강 원장은 "사회적 파장 등 문제가 되면 인사조치·징계처분 등 가능한 조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거취는 (박 위원) 본인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여당 의원들은 의혹의 중심에 있는 심평원장의 자진사퇴 등도 요구했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강 원장이 반성하는 태도가 전혀 없다"면서 "원장이 책임져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과연 국민이 용납할지 모르겠다"면서 "박씨가 그만두거나, (강) 원장이 그만두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