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일본에도 '알프스'가 있었다…지옥의 계곡 뒤 압도적 풍경 [스튜디오486]

중앙일보

2025.10.17 15:00 2025.10.17 15:0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 [스튜디오486]은 중앙일보 사진부 기자들이 발로 뛰어 만든 포토스토리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중앙일보는 상암산로 48-6에 있습니다. "

“일본에 알프스가 있다고?”

배낭을 이고 지고 들살이를 시작한 지 10년 정도 되었다. 한 번쯤은 국내를 벗어나 드넓은 하늘을 이불 삼아 누워보는 꿈을 꾸곤 했다. SNS 릴스를 넘기다가 한 장면에 눈길이 멈췄다. ‘다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立山黒部アルペンルート, TateyamaKurobe Alpine Route, 이하 알펜루트)’. 거대한 산맥 아래 작은 텐트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완연한 가을날, 그곳으로 떠날 결심을 했다.
라이초사와 캠핑장 모습. 거대한 봉우리 아래 펼쳐진 텐트들. 단풍의 물결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었다. 장진영 기자
과연 저 산을 내가 오를 수 있을까? 그것도 등짐을 가득 메고서 말이다. 도야마현의 다테야마 역에서 시작되는 알펜루트는 케이블카와 고원버스, 로프웨이, 터널버스 등을 이용해 횡단할 수 있다. 케이블카와 고원버스를 타고 해발 2400m에 위치한 무로도(室堂, Murodo) 터미널에 올라 인근을 트레킹하는 일정으로 계획을 세웠다. 최종 목적지는 라이초사와 캠핑장이다.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점인 무로도 터미널 앞. 장진영 기자
다테야마역에서 케이블카에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 장진영 기자

거리로는 약 2㎞. 한 시간이면 충분히 닿는 거리다. 텐트와 침낭, 매트 등의 백패킹 장비와 여벌의 옷 정도만 챙기고 식사는 인근 산장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덕분에 배낭의 무게는 평소보다 한결 가벼웠다.

알펜루트를 걷는 사람들. 장진영 기자
고산지대에 위치한 알펜루트에 자생하는 다양한 색의 식물들. 장진영 기자
가을날의 알펜루트를 걷는 사람들. 장진영 기자
가을날의 알펜루트를 걷는 사람들. 장진영 기자

푸른 하늘이 끝없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능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9월 말의 공기는 서늘했지만 따스한 햇볕 덕에 쾌적한 산행이었다. 걷는 내내 바라본 다테야마 3봉(立山三山, TateyamaSanzan)을 감싸는 짙은 운무는 산맥의 수호자처럼 다가왔다.

미쿠리가이케 호수. 화산 화구에 물이 고여 만들어진 호수다. 장진영 기자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여 걷다가 미쿠리가이케(御厨池, Mikurigaike) 호수에 다다르니 잔잔한 수면이 거울처럼 산맥을 비추고 있었다. 이 호수는 화산 수증기 분화로 생긴 화구에 물이 고여 만들어졌다. 호수 서쪽의 지고쿠다니(地獄谷, Jigokudani) 방향으로 향하자 바람을 따라 옅은 유황 냄새가 풍겨왔다. 이곳은 활화산 지대로 지금도 유황 가스가 활발히 분출된다.

지코쿠다니(왼쪽)는 유황 지대로 '지옥의 계곡'이라 불린다. 유황 가스 위로 산맥을 감싸는 운무가 펼쳐져 있다. 장진영 기자
유황 가스는 간혹 운무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구간은 ‘지옥의 계곡(Hell Valley)’이라고도 불리는데,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에는 마스크를 써야 할 정도로 냄새가 짙다고 한다.


각자의 속도에 맞춰 가을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 장진영 기자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어 언덕 위에 오르자, 라이초사와(雷鳥沢, Raichosawa) 캠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압도적인 풍경을 담아내느라 걸음이 느려졌고, 결국 2시간이 걸렸다. 캠핑장은 분지처럼 움푹 들어간 지형에 있다. 그곳을 감싸는 거대한 산맥은 폭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라이초사와는 다테야마 화산의 분화 활동과 빙하 침식으로 형성된 계곡으로, 굳은 용암과 화산재 위를 빙하가 깎아내며 만들어진 지형이다.

라이초사와 캠핑장 모습. 거대한 봉우리 아래 펼쳐진 텐트들. 단풍의 물결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었다. 아래 위치한 갈색건물은 화장실 등이 있는 캠핑장의 편의시설이다. 장진영 기자
텐트 문을 활짝열고 누워 이곳의 풍경을 감상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장진영 기자
라이초사와 캠핑장에는 가족단위 여행객들도 종종 보였다. 장진영 기자
기상 후 분주하게 장비를 정비하는 사람들. 장진영 기자
라이초사와 캠핑장에 설치된 '곰 주의 안내문'. 장진영 기자

워낙 넓은 곳이라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텐트를 설치하고 관리사무소에 요금(1박에 1000엔)을 지불하면 된다. 화장실, 세면대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취사는 가능하지만, 음식물 처리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곰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유황 지대 '지옥의 계곡' 너머로 석양이 물들고 있다. 이 시간만큼은 '천국의 계곡'이 더 어울리는듯 하다. 장진영 기자
지고쿠다니에서 펼쳐지는 석양을 감상하러 모인 사람들. 장진영 기자

알펜루트의 하이라이트는 태양이 하루의 임무를 다했을 무렵 시작된다. 봉우리의 윤곽을 따라 유황 지대를 물들이는 석양이 황금빛 장관을 만들어냈다. 저 멀리 운무가 수평선처럼 펼쳐져 있고 앞에는 유황 증기가 춤을 춘다. 마치 ‘살아있는 산’을 증명하듯 말이다. 밤은 빠르게 찾아왔다. 가로등도 자동차 불빛도 없는 이곳에는 텐트를 밝히는 나지막한 조명과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만이 가득했다.
라이초사와 캠핑장의 밤은 고요하고도 찬란하게 찾아왔다. 장진영 기자

일본 혼슈 중앙부에 위치한 다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는 지질적 구조, 지형 규모 등이 유럽의 알프스 산맥과 비슷해 '일본의 북알프스'라고 불린다. 3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밀집해 있고 날카로운 능선과 절벽, 구름 위로 솟아오른 고산지대의 모습이 알프스와 닮았다. 알프스 산맥처럼 강설량도 많고 겨울에는 최대 10m 이상 눈이 쌓이기도 해 알펜루트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라이초 산장에서 파노라마로 촬영한 다테야마 산맥. 가운데가 분지처럼 위치한 라이초사와 캠핑장이다. 장진영 기자
다테야마 지역은 일본 알프스의 시작점이자 '일본의 지붕'이라는 상징적인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은 계절에 따라 경관이 매우 달라지는 특징을 가졌는데, 5월까지 쌓인 눈의 대로라 불리는 ‘설벽’ 사이를 걸을 수 있다. 여름에는 고산 식물과 시원한 풍광, 가을에는 고도별로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다. 알펜루트의 전체 운영 기간은 4월 중순부터 11월까지고, 겨울철에는 폐쇄된다.

캠핑장을 조망하는 언덕에 위치한 라이초산장. 숙박은 물론 식사와 온천욕도 가능하다. 약 750m 거리지만 꽤나 많은 계단을 걸어야 한다. 장진영 기자
라이초사와 캠핑장과 라이초산장을 잇는 계단. 식사와 일몰 감상 등을 위해 수차례 왕복했다. 장진영 기자
알펜루트 여정의 시작점인 다테야마역. 장진영 기자
이번 여정을 함께한 짐. 텐트, 매트, 침낭, 경량의자 등 캠핑장비와 옷가지들을 62리터 용량의 배낭에 담았다. 장진영 기자



장진영([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