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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여자오픈 챔피언 지은희, 21년 선수 생활 마감

중앙일보

2025.10.17 23:47 2025.10.18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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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기자회견을 하는 지은희. 성호준 기자
LPGA 투어 선수 캔디 쿵이나 크리스티 커를 알면 올드팬 축에 든다. 지은희(39)는 2009년 US오픈에서 이들과 경쟁해 우승했다. 이후 16년 동안 정글 같은 LPGA 투어에서 버텼다. 19일 전남 해남 파인비치 골프장에서 막을 내리는 LPGA 투어 BMW 챔피언십을 끝으로 은퇴한다.

지은희는 경기 가평 출신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다. 수상스키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아버지는 남이섬 옆 북한강에서 중학생 딸에게 쇼트게임을 가르쳤다. 딸은 아버지가 타고 있는 보트를 향해 샷을 했다.

정교한 샷이 아니면 공은 물에 빠졌다. 그러면 아버지는 물속에 들어가 공을 찾아와야 할 때도 있었다.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한밤중 산속의 무덤에서 샷 연습 못지않은 멘탈 훈련이다. 지은희는 이 훈련을 견뎌냈다.

2007년 지은희는 신지애, 안선주와 함께 KLPGA 투어의 빅3였다. 세 선수가 매우 친했다. 경쟁이 심하며, 일종의 제로섬 게임인 프로 골프 투어에서 최고 선수들이 친하긴 쉽지 않다. 맏언니인 지은희의 마음이 넓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2007년 KLPGA 투어에서 빅 3로 불린 세 선수가 바나나 보트를 타고 있다. 경험이 많아 여유 있는 지은희(左), 겁이 나서 바짝 엎드린 안선주(中),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는 신지애의 대조되는 모습이 재미있다. 사진 KLPGA

지은희는 2007년 조건부 투어 시드로 미국에 진출해 2008년 첫 승을 했고 이듬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2022년 뱅크오브호프 LPGA 매치플레이가 마지막 우승이었다. 통산 6승을 기록했다.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은 전반적으로 일찍 시든다. 지은희는 32세에 한국 선수 중 최고령 우승 기록을 세웠다. 한국 선수 중 맏언니로 7년간 더 활약했다.

JTBC골프 박원 해설위원은 “지은희는 항상 골프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고, 몸 관리도 잘한다. 정신적으로 지치지 않으면서 의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일정을 짜고, 필요하면 스스로 채찍질도 하면서 해가 지도록 연습하는 자세가 10년이 넘도록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자기 관리의 표본”이라고 말했다.

BMW 챔피언십 3라운드 선두에 오른 김세영은 “언니는 항상 좋은 조언을 해줬다. 나와 효주, 미향이가 싸우면 중재역할을 해줬다. 그래서 은희 언니와 친한 줄 알았는데 은퇴사실도 몰랐다. 서프라이즈다”라고 말했다.

지은희는 과묵한 성격이다. 떠날 때도 조용히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 않아 월마트 대회(9월) 후 혼자 은퇴하려 했는데 LPGA와 BMW에서 한국에서 은퇴하면 어떠냐고 해서 이 대회에 나왔다”고 했다.

과거 LPGA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갑질을 하기도 했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은희도 많이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배로서 의무만 하고 권리는 누리려 하지 않았다.

지은희는 “축하를 받으니까 기분이 좋다. 올해 공이 안 맞았는데 이번 주 잘 맞는 걸 보니까 부담이 없어서 그런 듯하다. 내일 마지막 라운드도 후회없이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지은희는 또 “프로가 된지 21년이 됐고 LPGA 투어로 간 후 19년째다.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한 동안 쉬다가 이후 계획을 생각해보겠다”고 덧붙였다.

해남=성호준 골프전문기자
[email protected]

성호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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