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폭들의 캄보디아 러시가 이뤄진 건 3년 전이다. 원래는 필리핀과 베트남이 주요 거점이었으나 그것도 10여 년이 지나자 수명을 다했다. 워낙 많은 국내 수배자나 조폭들이 근거지로 삼게 되니 그들을 추적하는 경찰도 현지의 지리감을 익혔다. 거기다 십수 년간 구축된 교민들의 네트워크가 국내 수사기관과 연결되며 일종의 감시망이 된 까닭에 예전처럼 대놓고 불법을 영위하기도 어려워졌다. 필리핀에는 아예 한국 경찰이 상주하며 한인 사건을 전담하는 코리안데스크가 설치되며 범죄 조직의 입지가 줄기도 했다.
“그때 우리를 환영한 곳이 캄보디아였다. 특히 이민 브로커들은 국내 조폭과 조선족들에게 시민권과 사업 라이선스까지 보장했는데, 앞선 나라들과 달리 사실상 생면부지의 땅이란 점도 어필했다. 누구도 터치할 일이 없을 거라고. 그렇게 몇 년이 흘러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에 웬치(범죄단지)가 조성된 거다.”
올해로 꼭 10년 전, 태국 파타야에선 캄보디아 사태를 축소한 살인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과 고수익 미끼, 감금 그리고 폭력까지. 작금의 범죄 생태를 이해하려면 파타야의 한 리조트로 시점을 되돌려야 한다.
2015년 11월 20일 오후. 김형진(33)과 윤명균(34)은 객실에서 필로폰을 투약하면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폭계 선후배 사이지만 급수로 따지면 한 살 위인 윤명균이 좀 떨어진다. 당시 김형진은 전국구로 급성장 중인 성남국제마피아파소속인 반면, 윤명균은 지방 조직인 충남의 청양식구파로 전해진다. 조직의 규모도 그렇지만 태국에서 운영하는 도박사이트의 총책도 김형진인 만큼 평소 말버릇이나 태도에서 그가 윤명균을 형님 대접하는 인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김형진이 말했다. 불과 5시간 전쯤 사망한 임동준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지 묻는 것이다. 그는 5개월간 계속된 두 사람의 상습 구타로 뇌부종으로 사망, 당시는 혼다 CRV 차량 뒷좌석에 방치돼 있었다.
불에 데워진 유리관 속의 필로폰이 천천히 녹으며 연기로 올라오고 있다. 그걸 번갈아 투약하며 현실 도피를 하다가 슬슬 본격적인 논의를 할 때가 된 것이다. 물론 표현이 그렇다는 것일 뿐, 실상은 서로에게 책임 전가를 하려는 신경전이다.
판교의 한 중소 IT기업에서 일하던 임동준이 태국으로 넘어온 건 지난 6월께. 태국으로 넘어와 홈페이지 제작에 힘쓰면 거액을 주겠다는 얘기에 돌연 한국에서 출국했다. 호화로운 생활은 물론이고 하루에 정해진 업무량만 채우면 나머지는 자유시간이라고도 했다. 워킹홀리데이쯤으로 생각하고 왔으나 방콕의 한 오피스텔 15층 방을 배정받은 직후 그의 현실은 지옥으로 바뀌었다.
걸핏하면 구타당했고 사타구니에 화상을 입는 고문도 받았다. 약지 손톱도 뽑혔다. 도박사이트 개발이 더디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하도 맞아서 얼굴이 멍투성이인 탓에 밖에 나갈 땐 얼굴에 붕대를 감았다. 한 번은 오피스텔에서 도주하는 데 성공했지만 막상 공항에 도착했을 때 여권이 없는 걸 깨닫고 돌아가기도 했다.
“흔한 일이다. 범죄 조직은 이들의 여권부터 빼앗는다. 가까스로 도망치는 데 성공해도 기껏해야 대사관을 찾아갈 텐데 대사관은 수사기관도 아니고 범죄를 수사할 권한도 없다. 조직도 그걸 알아서 대사관쯤은 별로 개의치 않아 한다.”
운 좋게 대사관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행정절차상 여권을 재발급받는 데까진 2주일이 걸린다. 그 사이 대사관으로부터 신변 보호를 받는 일은 없다. 대사관에 머문다 해도 통상적인 근무 시간인 오후 5시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결국 본인이 알아서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찾아다니는 범죄 조직을 피해 다녀야 하는데, 지역 사정에 눈이 어둡고 지인이 있을 리 만무하기에 은거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경찰도 그들과 유착해 있을 공산이 커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애매하다. 자칫하다간 제 발에 족쇄를 채우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십중팔구는 대사관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도 다시 붙잡힌다. 범죄 조직도 이들이 의지할 데가 대사관밖에 없다는 걸 알고 근방에 부하들을 포진시켜 두기 때문이다. 한번 발을 담그면 무슨 수를 써도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임동준은 배신하려 했다는 이유로 더 심한 강도의 구타를 당하다 차 안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