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에 대한 1심 판결에서 시작된 별건(別件) 수사 논란을 두고 한 검찰 관계자는 23일 중앙일보에 이같이 토로했다.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의혹 1심 재판장인 양환승 부장판사가 “별건 수사 방식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21일)며 검찰을 비판하고, 이튿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수사기관이 엄중히 새겨들어야 한다”(22일)고 동조하자, 서울남부지검 등에선 불만이 터져나왔다.
별건수사란 본건 혐의 입증이 벽에 부딪혔을 때 다른 혐의 수사로 피의자나 관련자를 압박해 진술을 받아내는 수사 방법을 말한다. 남부지검 관계자는 “굵직한 증거·증언들이 별건수사를 통해 나온 사례가 적잖다”며 “대형 사건을 캐다 보면 의혹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를 못 본 척 하면 반대로 직무유기라고 공격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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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 수사 아니었으면 김건희 특검도 없다”
남부지검은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사건을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건진법사 의혹은 지난해 4월 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가 약 300억원대 코인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모(47)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당시 수사팀이 이씨 휴대전화에서 전씨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북 영천시장 후보자 측으로부터 1억원 상당을 받고, 친(親)윤석열계 의원에게 공천을 청탁한 정황을 우연히 포착한 것이다. 남부지검은 전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지난 1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결국 건진법사 수사는 김건희 여사의 의혹과도 이어지면서 ‘김건희 특검팀’이 이첩받았다. 지난 21일 특검팀은 전씨 측 변호인으로부터 통일교가 김 여사에게 청탁 대가로 건넨 그라프 목걸이, 샤넬 가방도 확보했다. 이를 두고 “별건 수사가 없었으면, 김건희 특검이 주장하는 성과도 없었을 것”(남부지검 관계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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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 압박으로 인한 자살 등 폐해 심각”
그러나 별건 수사의 부작용도 상당하다. 김범수 센터장의 SM엔터 주가조작 의혹 사건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검찰은 유일 증거로 이준호 전 카카오 엔터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을 제시했는데, 법원은 이 진술을 허위로 봤다. ‘바람픽처스 고가 인수 의혹’ 사건이라는 별건 수사에 압박감을 느낀 이 전 부문장이 “수사의 목표 지점이 김 센터장임을 인식하고, 그에 부합하는 거짓 진술을 했다”(양환승 부장판사)는 것이다.
압박을 받는 피의자가 자살하는 일도 적잖았다.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비리의 수사 대상이었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본인을 향했던 별건 수사를 비판한 후 2015년 4월 9일 목숨을 끊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6월 인권연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241명에 달했다. 이를 두고 “본건 수사가 잘 안 되니까 가족·친지·사돈의 계좌까지 모조리 뒤지고 불러 젖히면서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검찰 출신 변호사)이라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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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 수사에 대한 일률적 기준은 있을 수 없다”
결국 “제도적으로 보완하겠다”(정성호 장관)는 얘기가 나오지만, 별건 수사의 경계가 모호해 이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8월 별건 수사 방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별건 수사 시 2년 이하 징역·금고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과 법원행정처는 “별건 수사 기준에 대한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처벌 범위가 부당하게 확대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반대 입장을 냈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인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별건 수사가 잘못 됐다는 기준은 특정 사람을 구속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느냐’인데, 이는 보는 시각에 따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며 “일률적으로 별건 수사가 적법·위법하다고 구분 지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에서 영장주의의 정신과 수사의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