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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이별"…지진에 문 닫은 미얀마 한글학교, 추억도 닫혔다

중앙일보

2025.10.24 14:00 2025.10.2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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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8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망가진 악기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사진 천요섭 만달레이 한글학교장
" 지진으로 백일장 때 쓴 시와 소설도 다 버리고 이사해야 했어요. 남은 건 한글학교에서 만든 추억뿐이에요. "

지난 3월 28일 규모 7.7의 강진이 미얀마 만달레이를 강타한 지 어언 210일, 지진은 천수아(16)양의 소중한 일상을 앗아갔다. 만달레이 한글학교 수업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주말에 열리는 한글학교는 잦은 전쟁으로 불안정한 미얀마에 사는 아이들에게 드물게 주어지는 외출 기회였다. 한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다. 천양은 “휴대폰이 없는 아이들도 많고, 다들 다른 학교를 다녀서 주로 한글학교에서 만났다”며 “모여서 종이접기도 하고 수다 떠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고 했다. 천양은 특히 시 쓰기를 무척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 하지만 손꼽아 기다렸던 백일장 시간도, 제일 친한 친구를 만날 기회도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미얀마 만달레이 한글학교에서 과거 열렸던 백일장 모습. 사진 천요섭 만달레이 한글학교장

만달레이 한글학교는 매주 토요일마다 한국 교민 자녀들과 한국어를 배우길 희망하는 미얀마 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렸다. 2015년 교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달레이에 사는 한국인 아이들을 위해 세웠고, 2019년부터 해외동포재단의 지원을 받으며 무료로 운영되고 있었다. 저학년에겐 한글을, 13세 이상의 청소년들에겐 한국의 문화와 소설·역사 등을 가르쳤다. 천요섭(52) 만달레이 한글학교장은 “만달레이엔 한인 센터가 없어 학교가 자녀 있는 교민들의 구심점이었다”고 설명했다. 학생 수는 15여명으로 소수였지만 아이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지진이 있기 전까지는.


한글학교 수업이 열리던 미얀마 만달레이의 한 4층 건물 모습. 지진으로 인해 곳곳에 균열이 가 보수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 천요섭 만달레이 한글학교장

그러나 현지시간 3월 28일 오후 3시20분, 지진과 함께 모든 게 달라졌다. 수업이 열리던 4층 건물엔 커다란 금이 갔다. 여진으로 책장이 무너져 오래된 책들이 찢어지고 망가졌다. 컴퓨터와 악기, 대형 TV 등도 고장 나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들도 많았기에 지진 피해 수습에 있어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전반적인 재건이 이뤄지고 있는 지금도 한글학교 운영 재개는 요원하다. 바닥부터 다시 출발해야 하지만 예산 가장 큰 문제다. 한글학교는 대부분 교민들의 자체 모금을 통해 운영되는데, 지진으로 출국하거나 연락이 끊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지원이 크게 줄었다. 천요섭 한글학교장은 “건물 보수는 8월쯤 마쳤지만 교재부터 새로 사야 하는 상황”이라며 “교사도 다시 구해야 하다 보니 기존 해외동포재단 지원금만으론 역부족”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추억상자 같은 존재”라며 한글학교가 다시 열리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3년 동안 한글학교를 다녔던 노하명(15)군은 “3년 전 열렸던 백일장에서 애들이 벌집을 건드려 꿀벌을 피해 도망 다녔던 기억이 난다”며 “특히 점심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딱지 치고 탁구 치면서 노는 게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공부를 즐기지 않아도 매주 수업을 나왔다는 노군은 “한글학교를 더 이상 못 간단 소식을 들었을 때, 친구들이랑 그렇게 더는 못 놀겠구나 싶어 슬펐다”고 말했다. 미얀마에서만 17년 가까이 거주한 박상혁(18)군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한글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며 극복했다”며“난 이제 성인이라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앞으로 남아있을 아이들이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천 교장은 “추억이 쌓인 공간이 무너지면서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을 것”이라며 “만달레이의 많은 곳이 재건을 이루고 있듯 우리 학교도 다시 시작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치료제가 없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오소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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