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핵추진 잠수함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것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으로 무장한 핵잠 말이다. 일본은 ‘전쟁을 포기한다’는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을 할 수 있다’는 ‘보통국가’로 거듭나고 싶어 한다. 만일 일본이 SLBM 핵잠을 가진다면 자신들이 바라던 보통국가를 완성하는 셈이다.
발단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오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신임 총리다. 그는 지난 20일 제2 야당인 일본유신회와 연립정권 구성에 합의하며 정치·경제·국방 등 12개 분야의 주요 정책을 공개했다. 국방 부문에서 “차세대 추진력을 갖춘 VLS(수직발사장치) 탑재 잠수함 보유 정책을 추진한다”고 돼 있다. 차세대 추진력은 핵추진 방식을 에둘러 뜻한다. VLS는 SLBM을 발사하는 장치다. 일본은 적의 미사일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을 갖추기로 2022년 12월 국가안보전략에서 명시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일본은 유사시 중국 또는 북한을 탄도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는 핵잠을 갖겠다는 것이다. 일본 내부에서 핵잠을 건조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정부 차원에서 핵잠 도입을 국방 정책에 공식적으로 포함한 경우가 이번이 처음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섰을 때도 핵잠 보유 여부를 묻는 말에 “국제 환경에서 최악의 위험을 생각하면 조금 장거리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쇠뿔도 단숨에 빼려는 듯 서두르고 있다. 그는 24일 첫 국회 연설에서 “새로운 전투 방식이 나타나는 등 여러 안전보장 환경의 변화가 보인다”며 “주체적으로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를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2% 달성 시점을 “추가경정예산을 합쳐 2025년도 중으로 앞당기는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시점은 2027년이었다. 이로써 핵잠을 만들 예산을 마련하기가 쉬워졌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 신임 방위상도 22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차세대 추진력’을 갖춘 신형 잠수함 보유 정책에 대해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겠다”면서 “정당 간의 약속은 무겁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언제 첫 핵잠을 띄울까.
1970년대 핵추진 기술 확보한 일본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하기 전 일본은 이미 핵잠 군불을 땠다.
9월 19일
아사히(朝日) 신문에 따르면 일본 방위성 전문가 그룹은 중국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면 핵 추진 잠수함으로 해석할 수 있는 차세대 추진 시스템으로 잠수함 함대를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방위성 전문가 그룹은 국가안보전략(NSS), 국방전략(NDS), 방위력정비계획(DBP) 등 3대 전략 안보 문서의 이행 현황을 검토하고 미래 과제를 도출하려고 2024년 2월 만들어졌다.
잠수함은 은밀하게 전개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다. 스탠드오프(stand-off) 방어 능력을 갖추면 억제력이 크게 강화하므로, 이를 중시해 정비·구축을 추진해야 한다. 장거리 미사일을 탑재해 장거리·장기간의 이동·잠항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종래의 관례에 얽매이지 않고 차세대 추진(동력) 방식을 활용하는 방안 검토를 포함해 필요한 연구를 진행하고 기술개발을 수행해야 한다.
일본 전문가가 제안한 내용은 재래식 잠수함인 도산안창호급(3000t)과 장영실급(3600t)에도 VLS를 달아 SLBM을 발사하도록 설계한 한국의 방식과 결이 달랐다. ‘장거리·장기간의 이동·잠항’을 위한 ‘차세대 추진(동력) 방식’은 핵추진 방식을 의미하는 듯 했다.
일본의 군사 전문가
다카하시 고스케(高橋浩祐)에 따르면 일본 방위성 관계자는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차세대 추진 시스템은 주로 고체 배터리와 연료 전지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핵잠 도입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해당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만 답변했다.
사실 일본은 관련 기술을 이미 확보했다. 일본은 1972년 9월 4일 화물선 무츠호에 원자로를 탑재했다. 6MW급 저농축 우라늄(LEU) 원자로와 1만 마력 증기 터빈 추진 구조 방식이었다. 무츠호는 1974년 8월 28일 420해리(800㎞) 시험항해에 나섰다.
그런데 첫 시험항해 도중 차폐 결함으로 중성자와 감마선이 외부로 일부 누출됐다. 그러자 당장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일본은 피폭 국가인 데다, 1954년 미국 수소폭탄 실험 때 근처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선원 전원이 방사능 피폭된 적 있었다.
입항거부된 무츠호는 협의를 거쳐 간신히 입항한 뒤 원자로를 봉인했다. 곧 다시 출항한 무츠호는 4년간 바다 위를 떠돌다가 1978년에야 입항해 수리를 받았다. 이후 1993년까지 일본은 무츠호를 통해 핵추진 기관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쌓았다. 그리고 1993년 무츠호에서 원자로가 철거된 뒤 재래식 추진으로 개조돼 해양연구선 미라이(未來)호로 개명했다.
일본 전직 고위 당국자는 “핵잠 건조 역량은 확인했지만, 원자로 사용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고 말했다.
유사시 핵잠으로 중국·북한을 미사일로 타격
일본이 내세운 핵잠 보유의 명분은 전략적 억제력이다. 중국이 무섭게 군사력을 강화하며, 북한은 핵·미사일을 고도화면서 동북아시아의 안보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일본은 중국·북한을 억제하는 핵잠을 갖고 싶어한다. 일본의 핵잠은 유사시 중국·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핵잠이 전략적 억제력을 준다고 믿고 있다.
일본은 또 핵잠을 통해 인도·태평양 안보에서 더 주도적인 역할을 맡으려 한다. 핵잠은 오래 잠항하고 멀리 나갈 수 있다. 일본은 영해를 벗어나 해상 영유권 분쟁 지역인 동중국해·남중국해이나 서태평양 등 주요 전략 해역에서 초계작전을 펼 수 있다. 대만 유사 사태 때 재빨리 대만 해역으로 출동한 뒤 정밀타격 임무나 해상봉쇄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핵잠이 제격이다. 이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기여하는 조처다.
일본은 자국의 군사력이 한국·중국 등 주변국보다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3대 전략 안보 문서에서 자국 안보환경을 “전후 이래 최악 수준”이라 평가하면서 주변국과의 군사력 대비에서 ‘기본적 균형’을 맞추려고 2027년까지 방위비를 GDP의 2%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자민당 등 일본 보수 세력들은 핵잠이나 장거리 미사일을 도입해 주변국과 ‘전략적 동등성’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내부 사정이 일본 핵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공격무기인 핵잠은 ▶전쟁 포기 ▶전력(戰力) 보유 금지 ▶교전권 부인의 일본 헌법 9조를 정면으로 부인한다. 일본은 9조에 따라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했을 때 최소한의 자위력으로 방어한다는 전수방위 원칙에 어긋난다. 핵잠은 일본에서 원자력 기술 활용을 규정한 원자로 등 규제법·원자력기본법도 위반한다. 이 법은 모든 원자로는 반드시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핵잠은 비핵(非核) 3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일본 총리는 1967년 12월 1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답변에서 “핵을 갖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非核) 3원칙을 밝혔다. 비핵 3원칙은 1976년 5월 21일 중의원 결의로 일본 정부의 방침으로 자리 잡았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뿐만 아니라 핵추진 방식도 포함한다고 넓게 해석돼 왔다. 이 때문에 일본 국내 정치와 여론에서 핵잠은 매우 민감한 문제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여당이 핵잠을 강력하게 추진할 때 야당과 시민사회가 거세게 비판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이 자국이 공격을 받지 않아도 자국과 밀접한 나라가 공격을 받을 경우 이를 실력으로 저지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으로 자위대를 제약하는 족쇄를 풀었자. 이 같은 아전인수(我田引水) 유권해석으로 법적 규제를 빗겨나갈 수 있다.
일본 핵잠 반기는 미국의 속내는
일본의 핵잠 프로그램은 미국의 ‘후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오커스(AUKUS)의 호주 다음으로 미국의 낙점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은 미국 해군 잠수함 전력의 양적 부족에 직면한 상태에서 미국이 중국 견제를 수행하려면 오커스 국가와의 협력 필요성을 언급했다.
2023년 1월 12일 당시 마이클 길데이 미국 해군참모총장은 온라인 포럼에서 “일본이 핵잠을 건조하려는 결정은 수년간 정치적, 재정적으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요구되는 큰 걸음”이라며 “그런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적절한 인원·훈련·플랫폼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커스를 거론했는데, 일본이 오커스와 유사한 형태로 핵잠을 확보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일본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지만, NPT 자체는 핵추진 기술을 직접 금지하지는 않는다.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에선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도 이용되지 아니한다”고 나와 있지만, 이것도 돌아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찜찜하면 양국이 협정을 고치면 된다.
최일 잠수함연구소 소장은 “일본은 당장은 핵잠 건조를 안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도 “추후 건조한다고 하면, 오커스 형태로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오커스는 2021년 9월 15일, 미국·영국·호주 3개국이 맺은 인도·태평양 3자 안보 파트너십이다. 핵심은 호주가 미국과 영국의 도움을 받아 핵잠을 보유하는 것이다. 호주는 미국으로부터 버지니아급 공격 핵잠(SNN) 3척을 산다. 첫 잠수함은 2032년 인도받는다.
그리고 영국은 미국의 기술을 받아 오커스급 신형 공격 핵잠인을 짓는다. 영국은 2030년대부터 오커스급 12척을 건조한다. 호주는 영국의 설계에 따라 2040년대 오커스급을 5척 만든다. 만일 이 계획이 어그러지면 호주는 미국 버지니아급 핵잠을 2척 더 산다. 이렇게 해서 호주는 5~8척의 핵잠을 갖게 된다.
단 원자로와 원자로에 넣을 핵물질은 미국·영국이 마련한다. 최일 소장은 “호주는 NPT에 가입한 비핵 국가”라며 “잠수함 원자로의 유지와 보수도 영국이 맡는다”고 설명했다.
일본도 오커스에 가입하거나, 아니면 오커스 방식으로 미국으로부터 원자로와 핵물질을 받아올 가능성이 크다.
2024년 4월 7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오커스 가입을 추진하면서 기존 회원국인 미국·영국·호주가 관련 대화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일본은오커스의 양대 축인 필러(Pillar) 1과 2 가운데 필러 2 확장 대상이다. 필러 2는 3개국이 해저, 양자 기술, 인공지능(AI)과 자율무기, 사이버, 극초음속과 대(對)극초음속, 전자전, 국방 혁신, 정보 공유 등 8개 핵심 방위기술을 공동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필러 1은 핵잠 개발 프로그램이다.
일본은 필러 2에 가입한 뒤 필러 1까지 참가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한국 핵잠에 대해 유난히 냉담한 미국
일본이 핵잠을 개발한다면 동북아시아에 핵잠 도미노가 벌어질 수 있다. 자체 핵잠 개발 계획을 추진한 적 있는 한국은 물론, 대만도 중국을 견제한다며 핵잠을 만들려 할 가능성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을 옥죄던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이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3일 “(미측에) 우라늄 농축을 해야 하고,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주 강력하게 요청했고, 그게 받아들여졌다”며 “한미 간 원자력협력협정 개정에 대한 협상을 곧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르면 한국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만 농축할 수 있고,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원자력협정을 고치면 미국이 한국의 핵잠에 ‘축복’을 내려줄까. 당장은 농축과 재처리를 원자력발전소를 돌리는 데로 한정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한국이 일본보다 빨리 핵잠을 갖는 걸 미국이 달갑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한국 핵잠에 대해 미국의 당국자는 일관되게 반대했다.
2023년 3월 15일 앤서니 와이어 당시 미국 국무부 국제 안보·비확산 부차관보는 ‘한국에도 호주처럼 핵잠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는가’는 물음에 “미국은 미 해군의 핵추진 기술을 추가 공유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히 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같은 해 11월 24일 도브 자카임 전 미 국방성 차관은 미국 정치 전문 매체
더힐에 “비용과 기술, 작전상의 현실 모두 한국의 핵잠 보유에 불리하다. 한국 정부는 핵잠 도입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한반도 주변 해저 지형을 감안할 때 소음이 작은 재래식 디젤잠수함을 고수할 작전상 이유가 있다”라고도 했다.
2024년 6월 1일 로이드 오스틴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은 아시아 안보 회의에서 한국의 핵잠 도입론에 대해 “지금은 미국이 수용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의 발언은 일본의 핵잠 보유를 전제하지 않은 가정에 기반했다. 일본에게 핵잠을 허락하면 한국도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또 경제적 대가로 거래를 반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한국은 한국 스스로 지켜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잘 파고들면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다.
다만 미국을 설득하려면 일본과의 연대가 필요할지 모른다. 미국이 오커스의 동북 아시아판‘코저스(KorJUS)’를 짜려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은 핵잠을 가져 보통국가로 탈바꿈하려 한다. 한국이 미국을 매개로 일본과 안보협력에 나선 배경엔 전수방어의 일본이 있어서다. 당분간 한·일은 북한과 중국을 억제한다는 전략 목표를 공유하지만, 나중엔 서로 견제해야만 한 상황이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