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 “아니, 그걸 왜 맥락으로 보려고 해요. 그냥 해석하지 말고 즐겨요.” "
회사원 정수영(26)씨는 최근 후배가 보여준 영상을 이해하지 못해 핀잔을 들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주인공(크리에이터 ‘퐁귀’)이 ‘내 골반이 멈추지 않는 탓일까’라면서도 계속 골반 춤을 추는 설정의 밈(meme,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로 퍼지는 유행·모방 콘텐트)이었어요.
AOA의 ‘짧은치마’ 음악과 함께 반복되는 이 ‘골반춤 밈’은 국내 아이돌·유튜버는 유럽 네티즌까지 따라 하면서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어요. 밈의 영향으로 11년 전 나온 배경음악이 다시 차트 역주행을 하고 있고요.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겐 ‘이런 유행이 있어?’라고 할 만큼 생소합니다. 거기엔 이유가 있죠. 최근 1~2년 사이 SNS 피드를 채우는 밈의 유효기간은 초고속 열차만큼 짧아졌답니다.
주목할 점은 알아차리기 전에 사라지는 밈도 많고, 수명이 몇 주를 넘기기 어려워지면서 밈의 본질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유 없음’과 ‘무맥락’이 강력한 해학 코드가 된 것이죠. 웃기지도 않고,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유행을 이끌면서 밈은 이제 더는 풍자나 깊은 공감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숏폼 플랫폼이 유도하는 ‘인지적 피로 회피’ 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해요. 해석의 수고를 덜고, 즉각적인 도파민을 충족시키는 ‘생각 없음의 미학’이 젊은 세대의 소통 방식이 된 거죠. 또한 밈은 브랜드가 Z세대와 소통하기 위한 필수 마케팅 언어가 되었어요. 오늘 비크닉은 이러한 ‘밈’이라는 디지털 언어의 변화 양상을 집중 분석했습니다.
맥락 파괴와 감각 자극…짧아진 밈의 수명 속 ‘생각 없음의 미학’ 밈은 사람들이 따라 하고 퍼뜨리면서 생겨나는 문화적인 유행을 말합니다. 원래는 1976년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가 생물학적 정보를 복제하듯, 밈은 문화적 정보를 모방으로 전파한다”는 개념으로 만든 말이에요. 그래서 밈은 단어 같은 언어뿐 아니라 짤·영상·행동·말투처럼 비언어적인 것도 다 포함돼요. 신조어와는 차이가 있어요. ‘폼 미쳤다’ ‘억까’처럼 새로 만든 말이 아니라, 모방과 변주를 통해 퍼진 거예요. 요즘엔 이 둘이 섞여서 기존 맥락을 비틀거나 웃기게 재해석하는 식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아요.
여기서 잠깐, 스크롤을 멈추고 다음 리스트를 확인해 보세요. 최근 2년간 등장한 대표 밈이랍니다. 여러분은 이 중 몇 개를 알고 있나요.
과거의 밈은 풍자와 해학, 혹은 깊은 공감대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숏폼 시대에 밈은 채 몇 주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죠.
숏폼은 사용자의 도파민을 즉각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유행을 끊임없이 추천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정보 과잉시대의 빈틈을 공략합니다. 뇌에 해석의 수고를 덜어주는 ‘생각 없음의 미학’을 제공하며,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웃음’을 통한 피로 회피의 장치로 기능합니다. 결국 요즘 밈의 성공은 시각적·청각적 리듬이나 독특한 액팅을 통해 즉각적인 쾌락을 주는 데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무맥락적 밈 소비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합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인간의 이성보다 본능에만 충실하도록 유도하는 밈들이 많아진 게 사실”이라며 “생각을 하지 않게 자극만 주는 밈은 오프라인의 마약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고 설명합니다. 도파민 의존을 통해 젊은 소비자들이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고 중독에 매몰될 수 있다는 의미죠. 이어 이 교수는 “그럼에도 밈은 여전히 우리가 시대의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자극과 해석 사이에서 스스로 걸러내고 중심을 잡는 균형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케팅 최전선…밈 알아야 Z세대와 ‘이븐하게’ 소통한다
밈은 더는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세대를 묶는 문화적 언어이자 강력한 마케팅 도구이기도 해요. 특히 Z세대와 소통하려는 브랜드에 밈은 필수 전략이 되었죠. 초기 밈 마케팅은 유행하는 짤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따라쟁이’ 수준이었어요. 브랜드가 “우리도 유행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정도였죠. 하지만 유행 주기가 짧아지고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마케팅 전략도 진화했습니다.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이나 비문을 광고나 SNS에 사용하면서까지 브랜드 정체성과 연결시켜 자발적 바이럴을 유도해요. 서브웨이 광고에 ‘묵찌빠 전공’ 밈이나 버거킹 광고에 ‘사딸라’ 밈의 활용은 바이럴을 유도한 마케팅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프로젝트라도 일반 마케팅의 참여율이 5%였다면 밈을 활용했을 때는 약 10배 더 높은 도달률(60%의 유기적 참여율)을 달성했다고 합니다. 또한 밈 광고의 클릭률(CTR)은 다른 마케팅보다 14%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챌린지 형태로 소비자 참여를 유도하여 브랜드에 대한 친밀도와 소속감을 높임으로써 ‘말이 통하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죠.
다만 밈을 활용하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Z세대는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원작자에게 정당하게 값을 지불했는지를 따지는 등 비판적 시각도 커지고 있어요. 과거 일부 기업들이 유행하는 밈의 원본 콘텐트나 유명인의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하다가 ‘저작권 인식이 부족하다’는 뭇매를 맞았던 사례는 이들의 높은 언어 및 문화 감수성을 보여줍니다. 밈은 빠른 생애사 전략을 통해 시의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원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성공의 필수 조건이 되었답니다.
밈의 생명 연장술에 달린 이번 주의 운명
밈은 우리의 느낌을 건드리느냐로 성패가 갈립니다. 느낌이 공유·반복되며 유행이 되고, 변형되면 문화가 되죠. 그렇다면 현재 가장 뜨거운 ‘골반이 멈추지 않아’의 생명은 언제까지일까요. 이는 오직 두 가지 조건에 달렸어요. 첫째, 이 밈들이 ‘이븐하게’나 ‘너 T야?’처럼 일상 숙어로 자리 잡는 변주에 성공하는 것. 둘째, 이들을 뛰어넘는 더 강력하고 중독적인 새로운 감각의 밈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밈의 생명에는 또 다른 변수가 있습니다. 바로 ‘비주류성’입니다. 밈은 보통 소수 커뮤니티에서 시작해 입소문을 탑니다. 그런데 기성세대가 ‘요즘 유행’이라며 밈을 공식 석상에서 사용하는 순간, 혹은 소수 문화가 주류가 되는 순간 급속도로 식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이들 밈의 수명은 다음 화면이 나올 때까지, 혹은 우리가 스크롤을 멈추는 바로 그 순간까지일지도 모릅니다. 밈의 운명은 늘 그렇게 ‘멈추지 않는 골반’처럼, 잠시도 멈춰 있지 않기 때문 일지도요. 이 기사가 나가면 ‘골반이 멈추지 않아’의 유행이 끝나는 거 아니냐고요? 그럴 수도 있죠, 밈이니까요.